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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토이트 징벌전쟁
Arteutich Bestrafungskri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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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4796년 3월 11일 ~ 4796년 6월 6일
장소
남메디아 북동부 미세자리아
원인
미세자리아 연합아르토이트 제국 모욕
미세자리아인을 포함한 아르토이트인 구원
교전국 아르토이트 제국 미세자리아 동맹
아르토이트 제국 ART 미세자리아 연합 MSS
앙둔 제국 AGD
지원 세력 네즈니베 NZH 이렘나 철랑대 IRN
상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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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아르토이트 제국 하인리히 폰 아이진아르토이트 미세자리아 연합 하이디데즈 노몰라스
앙둔 제국 곈할라 앙둔
병력 아르토이트 제국 ?명 미세자리아 연합 240,000명
앙둔 제국 1,000,000명
피해 규모 아르토이트 제국 ?명 전사 미세자리아 연합 ?명 전사
앙둔 제국 ?명 전사
민간인
사상자
?명 희생 ?명 희생
결과
아르토이트 제국의 완승
영향
미세자리아 연합 붕괴 후 아르토이트 제국에 흡수
아르토이트 제국남메디아 북부 진출

개요

아르토이트 제국 건국 이후 아르토이트인이라는 국가적인 정체성 재확립 및 구성원 보호라는 명분으로 미세자리아 연합을 침공하며 시작된 전쟁.

배경

남미세자리아 부족공화국바란 연방의 멸망 이후로 베니치 대공국의 지원을 힘입어, 자신들의 동족이나 다름없었던 미세자리아 연합의 구성원들을 노예로 잡아다 팔면서 경제를 유지하였다. 이런 연유로 남미세자리아 부족공화국은 같은 미세자리아 계통 국가인 미세자리아 연합보다 부토니에 계통인 다른 국가들과 가까웠고, 아르토이트 왕국 개국 시 미세자리아 연합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르토이트 왕국에 흡수되는 길을 선택하였다. 아르토이트 왕국바란 연방의 유산을 정리하고 신정체성을 찾을 때 남미세자리아 부족공화국의 왕국 참여는 이 정체성 확립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는데, 아르토이트 왕국의 신민이라면 민족에 상관없이 아르토이트인이라는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구실이 되었다.

아르토이트 제국의 제국 천명 이후로도, 미세자리아 연합남미세자리아 부족공화국이 있었던 세자리아 강 유역을 지속적으로 반환하라고 요구하였다.[3] 그러나, 아르토이트 제국미세자리아 연합의 이런 요구를 묵살했을 뿐만 아니라, 미세자리아인 전체를 아르토이트인으로 재규정하여 아르토이트인 구원이라는 명분으로 미세자리아 연합에 대한 확장주의적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다.

발단

아르토이트 징벌전쟁 선포

양국의 긴장감이 높아지던 와중, 미세자리아 연합에서는 자국이 빈곤한 이유를 아르토이트 제국의 전신이었던 베니치 대공국남미세자리아 부족공화국의 탓으로 돌린다. 전쟁 명분을 찾고 있었던 아르토이트 제국은 이것을 국가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 미세자리아 연합 징벌을 목표로 제국원력 96년[4] 3월 11일 미세자리아 연합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다.

아르토이트 징벌전쟁 선포문


아국, 아르토이트 제국제국원력 96년 3월 11일 15시 00분을 기점으로 미세자리아 연합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는 바입니다.

미세자리아 연합에서는 구 바란 연방의 멸망 이후, 자국민들의 삶이 고달파진 것에 대한 이유를 아르토이트의 전신인 베니치남미세자리아에 존재한 적이 없는 노예제도에서 찾았으며, 이는 지금까지 아르토이트에 대한 큰 모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아르토이트미세자리아의 국가적 모욕에 대한 징벌과 미세자리아인을 비롯한 아르토이트인에 대한 구원을 이유로 미세자리아 연합에 대한 전쟁을 선포합니다.

아르토이트는 이를 통해 한 번 더 견고해질 것이니, 신은 우리를 보우하소서(So wahr uns Gott helfen)!

 
— 하인리히 폰 아이진아르토이트, 만인의 황제.

세자리아 강 북부 유역 공습

앙둔 제국의 참전

아르토이트 제국미세자리아 연합 침공은 미세자리아 연합의 수교국인 앙둔 제국의 반발을 불러왔다. 앙둔 제국의 국가적 프로젝트인 해저교통로의 종착지 중 하나가 미세자리아 연합일 정도로, 앙둔 제국미세자리아 연합과의 교류를 중요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전쟁으로 인해 미세자리아 연합의 안위가 불분명해지면서, 앙둔 제국의 국가적인 프로젝트 무산과 우호국 상실을 우려한 앙둔 제국아르토이트 제국에게 선전포고를 하며 자소크력 4796년 3월 16일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앙둔 제국의 선전포고


우리 앙둔 제국의 수교국 미세자리아 연합의 유구한 영토가 처참한 전장으로 변모한 지 어언 5일 차, 그간 곈할라 앙둔 용황 폐하께서는 깊은 슬픔을 씻어내지 못하셨다. 미세자리아 연합의 국가원수 하이디데즈 노몰라스 수석판관이 당국의 유일한 벗인 우리 제국에 병력지원을 요청해온 바, 용황 폐하께서는 아르토이트 제국에 맞서 싸울 것을 천명하시고 1차적으로 백만 대군을 출전시키기로 결정하셨다. 용황 폐하께서는 친히 출정식에 참석하시어, 앙둔 제국의 첫 대외전 참전인만큼 목숨을 아끼지 말고 맹렬히 싸워 국격을 드높이라 덧붙이셨다.

 
— 해룡일보

카나의 전단 살포

"카나가 지켜본다"... 펠레마서 발견된 새로운 전단


펠레마에서 카나의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전단이 발견되었다. 전단에는 '평화를 파괴하는 자는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문구와 '정의를 등지는 자는 죄의 묘지기가 될 것'이라는 문구가 사트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적혀있었다.

전단은 아르토이트 제국앙둔 제국의 선전포고 직후에 발견되어, 해당 전쟁을 겨냥하고 퍼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카나가 이전에 보여왔던 행보를 근거로, 이번 전쟁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해 중재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이뤄지고 있다.

 
다메타시아의 언론

1차 이상현상 관측

미세자리아 연합 측 군사령부에 이상현상 발견... “마치 무지개 같았다”


전쟁 개시 7일차[5], 미세자리아 연합의 사령부에 이상현상이 발견되었다. 미세자리아아르토이트 제국군에 의해 지속적으로 영토를 상실하자, 이에 대비하여 최고지도자회의를 개최하고 있었다.

회의가 한창 진행되던 중,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현상이 관측되었다. 목격자의 말을 빌리자면 “하늘에서 세 갈래의 무지개가 내려왔다”고 전해졌는데, 이 현상은 13분 동안 일어났으며 이후 주변 건물이나 지형에 아무 피해도 주지 않고 사라진 것으로 파악된다.

이후 수석판관 · 합동참모 · 경찰국장 · 재벌을 포함, 각계 유력자들의 행적이 묘연해지자 미세자리아 연합 내부에서는 끊임없는 혼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지개”의 반대쪽 방향은 아르토이트 제국을 향해 있었다는 증언만이 남았을 뿐이다.

이렘나의 지원 선언

머나먼 전쟁을 향한 도움


581대 철랑대장이자 파랑의 계승자, 바쟌투헤프 세이히누라흐[6]가 주최한 철각 회의에서 미세자리아-아르토이트 전쟁으로 인해 소모되는 앙둔 제국껴제모걀 원자재를 무상으로 충원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이 결정은 이렘나 철랑대앙둔 제국에 걸친 서로 간의 우호맹세에 기반하였다.

그들의 무기가 더 많은 사상자를 내기를 바란다. 그래야 우리가 앞으로 날아갈 수 있으니.


전쟁에 소모된 껴제모걀 충원을 위한 원자재 무상 공급안 - [남 크리할니킬 기사단 발의]
73.2%-통과
[7]

그러나 이렘나 철랑대앙둔 제국의 승전을 바래서 이 전쟁을 지원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일각에서는 도움은 명목상일 뿐이고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유력한 추측으로는, 이렘나 철랑대앙둔 제국의 무기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북미세자리아 반란

미세자리아 내부에서 반란 발생… 군에도 군벌 형성 "엎친데 덮친 격"


아르토이트 징벌전쟁이 발발한 지 4주가 지난 4월 11일, 미세자리아 북부에서 대규모 반란군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주로 공장 노동자와 노예 등의 하층민으로 보이며, "우리에게 먹을 것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군 고위 장성들이 전부 실종된 지금, 미세자리아군은 주 전선인 아르토이트-미세자리아 국경지대에서 반란군을 진압할 것인지, 아니면 국경지대를 사수할 것인지에 대해서 하급 장교들의 논쟁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일부 장교들은 야심한 시각에 아르토이트로 몰래 넘어가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아르토이트 제국은 해당 반란에 '자신들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으며, 그동안 신민들에 대한 통치를 올바르게 하지 못한 미세자리아의 잘못'이라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미세자리아 연합 북부 지역의 노동자와 노예를 비롯한 하층민들이 열악한 대우를 견디지 못하고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미세자리아군은 크게 세 가지 파벌로 쪼개지게 된다.

  1. 지금 당장 아르토이트 전선의 일부 병사를 차출해 반란군을 진압할 것을 주장하는 강경파
  2. 우선 아르토이트 전선부터 해결하는 것을 주장하는 지연파
  3. 아르토이트와 정전 협정을 체결하고 반란군을 제압할 것을 주장하는 유화파


북미세자리아 반란 이후 실제로 탈영하는 병사들과 하급 장교들의 수가 증가했다는 아르토이트 발 통계가 있으며, 아르토이트는 이를 정치적 망명으로 받아들이고 이들에게 새로운 신분과 아르토이트인으로서의 신민 자격을 주었다.

앙둔 제국의 군통수권 인수

앙둔 제국, 미세자리아군 통수권 인수


최근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바로 잡기 위하여, 앙둔 제국군미세자리아군의 통수권을 인수하고 작전을 이어나가기로 결정했다. 이는 일시적인 사항으로서 이번 전쟁 동안 군정권은 앙둔 배갑대신, 군령권은 앙둔 흉갑대신이 가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흉갑대신은 최전선에 신형 껴제모걀 10기를 본격적으로 투입하고, 미세자리아의 자주를 수호하는데 힘을 다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앙둔 제국군은 전쟁 초반 관측된 무지개를 동반한 기이한 현상에 대해서도 조사 중에 있으며, 그 배후를 밝히는 즉시 막강한 군사력을 행사하겠노라고 엄중히 경고하였다.

당시 앙둔 제국군껴제모걀에 오만함과 자부심이 있었다. 아마 아르토이트군을 완전히 전멸시키는데 10기면 충분하겠다고 오판한 것으로 보인다.

전개

아르토이트군의 포격 경고

국가방위군미세자리아인들에게 알림


제국 국가방위군은 개전 이후 5주차가 되는 이 시점, 제국원력 96년 4월 18일 1000에 미세자리아 지역의 신민들에게 알린다. 현재 미세자리아 동부 해안에 앙둔 제국의 것으로 추정되는 병력을 포착, 이들이 국가방위군판처 사단을 공격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는 아르토이트를 수호하는 국가방위군에 대한 명백한 적대행위로 판단되었으며, 그에 따라 2시간 내에 해당 지역으로 포병대를 이용한 집중 포격을 가할 예정이니 즉시 피난하라.

예정된 포격 술식은 다음과 같다:
- 1차 포격: 빙결 술식을 이용해 적군의 이동가능성을 완전차단할 것.
- 2차 포격: 관통 술식을 이용해 적군의 구동부와 관절을 절단할 것.
- 3차 포격: 화염 술식을 이용해 무차별 폭격으로 확인사살할 것.

집중 포격은 2시간 뒤, 1200으로 예정되어 있으니 즉시 피난하라. 포격은 적군의 무력화가 확인될 때까지 멈추지 않을 예정이며, 30분 마다 포격을 반복할 예정이다.

피난하기에 마땅한 곳이 없다면 제국군에게 피난 의사를 밝혀라. 제국미세자리아 난민 개개인을 신민 하나하나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으며, 그 어떤 불이익도 주어지지 않을 것을 보장한다.

다시 알린다. 미세자리아인은 지금 즉시 피난하라.

종달새, 참나무. 여기는 북극성. 수목원 도토리 이상.

여기는 종달새. 수목원 31-58 이상.

여기는 참나무. 수목원 매화꽃 이상.

여기는 북극성. 31-58에 우박. 31-58에 우박. 종달새는 즉시 매화꽃에, 이후 참나무는 진달래에 낙산사하라. 재송. 31-58에 우박. 31-58에 우박. 종달새는 즉시 매화꽃에, 참나무는 진달래에 낙산사하라. 이상.

교신끝.

교신끝.

 
— 포격 예고 직후에 포착된 교신

앙둔 제국의 4.18 후퇴

앙둔 제국, 최전선에서 후퇴


4월 18일 아르토이트 제국의 본격적인 포격이 3차에 걸쳐 잇따르자, 앙둔군은 최전선에서 후퇴했다. 아르토이트군 포격 술식의 영향으로 미세자리아 동부 해안의 일부는 급속 냉각과 해빙, 증발을 거쳐 소금 지대로 황폐화되었으며, 앙둔군 껴제모걀의 파손된 부품 역시 깨지고 그을린 채로 즐비하게 널려있어 전쟁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앙둔군아르토이트군의 수준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며, 앙둔군이 후퇴를 결정한 것 역시 전력 재정비에 있다고 많은 군사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여기엔 이견도 있는데, 정작 미세자리아인들의 민심이 들끓고 있는 탓에 앙둔군의 참전 명분이 점차 옅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앙둔이 과연 언제까지 전쟁을 계속 이어나가게 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카나

미세자리아 수뇌부 구출작전

미세자리아군, 수뇌부 구출작전 성공


5월 5일 새벽, 미세자리아군아르토이트 제국의 수도 토이틴의 황궁 별관에 침투해 당국 수뇌부 요인 중 일부를 구출했다. 해당 작전에는 앙둔 제국의 경량형 껴제모걀 2기를 포함한 소수 병력 역시 함께 투입된 정황이 포착되었다. 작전 수행 중 황궁 경비 병력과의 충돌이 발생한 듯 보이나, 사상자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현재 미세자리아군의 통수권을 쥔 앙둔 제국이 협상조차 시도하지 않고 무리하게 작전을 밀어붙였다는 점에서,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카나

미세자리아 신정권 수립

미세자리아 신정권... 수뇌부에 대한 실망과 분노의 결과물


5월 6일, 앙둔 제국에 의해 구출된 미세자리아 수뇌부와 고위층은 다시 미세자리아 연합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북미세자리아 반란군이 국토의 북쪽 1/3을 점령한 상태였고, 아르토이트 제국군이 남쪽 1/3을 점령한 상태였다.

미세자리아 수뇌부는 이와 같은 상황에 크게 분노하며 “왜 나라 꼴이 이따위냐”, “너희는 역시 우리가 군림해야 한다. 너희 같이 천한 것들이 군사에 대해 무얼 알겠냐.”며 군부를 질책하였다.

미세자리아 군부앙둔 제국 측에서 제공한 정보를 통해 수뇌부아르토이트에서 호의호식하고 있던 것을 알고 있었고, 미세자리아 수뇌부에게 냉랭하게 대응했다.

결국 5월 7일 새벽, 유화파 장교들이 지연파 장교들과 연대하여 강경파 장교들과 수뇌부를 포위 및 무장해제 했으며, “미세자리아 신정권”을 자칭했다.

이 사건에 의해서 미세자리아는 다시 한 번 혼란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아르토이트 제국군은 점령한 지역에서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미세자리아인에 대한 민심 확보와 국토 개발에 더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왜 이렇게 유화적으로 피정복민을 대하냐”는 질문에는 “미세자리아인은 당연히 아르토이트 제국의 신민”이라며 “아르토이트 제국미세자리아인을 해방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이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려 한 것이 아니다.”라고 자신들의 의사를 밝혔다.

 
카나

미세자리아 신정부의 신통화 발행

'미세자리아 신정권, 새로운 통화를 발행 선언.. 앙둔측 반응은 싸늘 (5월 11일)


미세자리아 신정권은 조폐국 점령을 시작으로 자국의 새로운 통화를 발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북부의 노동자 봉기와 민간의 악화된 민생 사정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로 생각되나, 미세자리아를 지원하고 있는 앙둔 제국에서 파견된 전문가들은 이들의 행동에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일차원적인 해결방법", "민간 혼란은 심화될 것"이라며 이들의 정책을 비판했으나, 미세자리아 신정권에서는 이를 무시하고 강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카나

10일 간의 대치

"앙둔 제국, 의문스러운 포격…"
(5월 22일)


지난 5월 12일, 앙둔군은 온갖 예상을 깨고 서부 내륙 지대의 국경 인근 점유지에 진지를 구축했다. 아르토이트군 측 역시 앙둔군이 내륙까지 진출할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 급속히 대응 병력을 배치했으나, 그 누구도 섣불리 공격하지 않으면서 10일이란 긴 시간이 흘렀다. 유의미한 군사적 움직임이라고는 그제인 5월 20일 앙둔군 측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기계를 후방으로 옮긴 것이 끝이었으므로 의구심은 더욱 커져갔고,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는 팽팽한 긴장감만이 고조되고 있었다.

오후 3시 경, 섬광과 열기를 동반한 갑작스런 폭발음이 3번에 걸쳐 발생했다. 10일의 정적을 깨는 앙둔군의 선제 공격이었다. 하지만 이 3번의 포격은 정확히 아르토이트의 국기와 군기, 미세자리아 신정권기의 게양대 머리 부분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을 뿐 그 어떠한 사상도 내지 않았다. 이러한 앙둔군의 자세에 대해 수많은 전문가들은 종전 의지를 우회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그저 군사력 과시일 뿐이라는 냉담한 시선도 존재한다. 진실이 무엇일지는, 계속해서 지켜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카나

2차 이상현상 관측

앙둔 제국 전진기지 근처에 또다시 나타난 "무지개" (6월 3일)


사흘 전, 앙둔 제국 측의 포격이 아르토이트 제국의 진지 위를 스쳐 지나갔을 때, 아르토이트 제국 측은 앙둔 제국이 사실상 전장에서 이탈하려는 의지를 표방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르토이트앙둔과의 공식적인 회담을 열 것을 발표했으며, 앙둔 제국 전진기지 측 군사의 일부를 다른 전선으로 재배치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또한 이번에는 앙둔 제국 전진기지 주위에 지난 3월 18일에 목격되었던 것과 똑같은 무지개 현상이 나타났다. 이 현상은 두 번에 걸쳐서 일어났으며, 미세자리아 건과는 달리 앙둔 측의 누군가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한 가지 의문스러운 점은, 앙둔의 전진기지 내에서 아르토이트 제국군의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여럿 목격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앙둔 제국군의 사령관으로 보이는 자와 기지 내를 함께 산책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카나


종전

아르토이트 제국군앙둔 제국군 양측의 최고사령관이 만나 약식의 회담을 가진 지 사흘 만인 4796년 6월 6일, 공식적으로 종전 협정에 조인하고 전쟁을 마무리 지었다. 앙둔 제국미세자리아 연합 수뇌부에 등을 돌렸고, 미세자리아 연합은 결국 아르토이트 제국의 새로운 영토로 복속되었다.

영향

미세자리아 연합아르토이트 제국에 합병되었고, 구 미세자리아인은 전부 아르토이트인으로 국적이 변경되었다. 아르토이트군에 저항하는 세력이 존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르토이트군이 점령지의 치안관리를 철저하고 전쟁범죄의 발생을 최소화했기에 큰 반발이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미세자리아 내분 - 북부 노동자 세력과 군벌 세력에 의한 혼란에 질린 미세자리아 민간에서 아르토이트로 피난하는 일까지 일어나는 상황이었기에 미세자리아인 대부분은 아르토이트로의 편입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이는 군벌에 의해 자립이 불가능할 정도로 경제가 붕괴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판단된다.

기타

도보게

각주

  1. 2024년 5월 18일 09시 02분 10초 기준. 미디어위키 표현식의 한계에 의해서 이 값은 정확하게 나타나기 힘들다. 정확한 값을 얻기 위해서는 사트/표준#Python 구현에서 설명하는 방법을 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디스코드 서버에는 차단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습니다.
  3. 이 지역은 정글이 가득하던 미세자리아 연합의 구 영토중 가장 풍족한 지역이었다.
  4. 자소크력 4796년
  5. 제국원력 96년(4796년) 3월 18일
  6. v'Azyantuchep s'Iychinurach
  7. 반대 의견 우세 기사단 대표부 : 아르세른의 방벽, 니크비츠 삼림, 남 크리할니킬, 네라다 지방, 세혜카사 제도, 하노릴 지방
  8. 하양과 함께 작성
  9. 카야와 함께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