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라투키 비문은 4773년 북메디아 라투키 반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출토된 비석들과 양각으로 새겨진 문자 기록을 일컫는다. 평균 크기는 높이 90cm × 너비 50cm에 달하며, 아래 내용이 빼곡하게 반복해서 새겨져있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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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문 탁본

投名狀 (투명장) tumennzann
의를 맺기로 다짐하는 글


吾一也 (오일야) nkojinra
나는 하나다

吾等一也 (오등일야) nkodynhinra
우리는 하나다

朕咀暑氣 (짐저서기) zimgesyki
나는 더위를 씹는다

朕蹂寒氣 (짐유한기) zimrunkanki
나는 추위를 밟는다

朕碎敵之齒 (짐쇄적지치) zimsedecici
나는 적의 이빨을 부순다

朕擢敵之腰 (짐탁적지요) zimtakdecijo
나는 적의 허리를 뽑는다

我等團也 (아등단야) nkadynntanha
우리는 여럿이다

我團也 (아단야) nkatanha
나는 여럿이다

朕之名狼狽 (짐지명낭패) zimzimennlampe
나의 이름은 낭패이다

記憶矣 (기억의) kiqyci
기억하라


 
— 가장 유력한 해석본

배경

당시 앙둔 제국켸피투곈할라 앙둔은 새로운 산업 아이템을 찾고 있었다. 국영 브랜드 앙두니으 기피르의 주요 상품 5종 중 4종이 식품이었을 정도로 식품공업에 치중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브랜드의 근본부터 탈바꿈하여 국제적 위신을 높이고자 했으며, 이 과정에서 차딘드럴 · 폼쳉 · 이슝을 폐지했다.

4763년 4월 5일, 앙둔 제국은 본토와 연결된 해저교통로 즉 쉬조이딩갸 중 일부를 수교국에 한정하여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해당하는 해저교통로는 총 5개선으로, 라투키 반도로 연결된 라투키로(現 공민로)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앙둔 제국은 앙둔식 대규모 휴양숙박시설인 차떰을 연계개발하고 있었는데, 자그마치 10년이나 공사가 진행되고 나서야 이 "라투키 비문"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첫 출토 당시에만 7개의 비석이 발견되고 날이 갈수록 추가 출토되는 바람에 공사에 차질이 생겼다. 하지만 앙둔 제국에서는 이마저도 라투키 차떰의 상징물로 삼을 심산으로 학계에 감정을 맡기게 된다.

연구 과정

4773년 출토 직후부터 북메디아 일대 국가들은 물론 타 대륙의 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여 해석을 시도했으나 쉽지 않은 판국이었다.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 결과에 따르면 무려 6천 년 전 유물이라고 하지만, 이조차도 충분히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마냥 신뢰할 수 없었다.

덩시 학계는 의혹을 갖게 하는 가장 큰 이유로 라투키 반도의 지리적 형질과 역사성을 꼽았다. 우선 라투키 반도는 인류가 터전을 잡고 살기에는 험난하고 위험하여 오랜 기간 국가가 세워진 적이 없는데다가 대파랑을 일으켰던 파랑 기병대마저도 당시 완전히 점유하지 못했던 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문에서는 고유하고 잘 정비된 문자 체계를 사용하고 있으며, 정교한 양각 기법으로 글씨를 새겼지만 오랜 시간 큰 훼손 없이 잘 보존된 것에서 기술력이 돋보였다.

같은 맥락에서, 북메디아의 나라가 없는 혹은 나라를 잃은 소수민족들이 남긴 흔적이라 보기에도 어려웠다. 엄선한 석재를 다듬어 동일 규격으로 비석을 제작한 다음 동일한 내용을 한치의 실수도 없이 계속해서 새겨놓았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행정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었다.

아래는 출토 3년이 지난 4776년 4월 15일, 라투키 비문 조사단에 서신으로 도착한 로마자본이다. 하지만 해당 서신이 비문과 명확히 관련이 있다고 밝히는데에도 오랜 시간을 소요했으며, 때문에 조사는 더욱 미궁에 빠지게 되었다.

tumennzann. nkojinra, nkodynhinra, zimgesyki, zimrunkanki, zimsedecici, zimtakdecijo, nkadynntanha, nkatanha, zimzimennlampe, kiqyci.

 
— 로마자본

라투키 비문은 간혹 아래와 같이 이형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안그래도 해석 진도가 더딘 판국에 이형 판본들은 혼란만을 야기한다고 생각되어,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ᨈᨘᨆᨙᨂᨍᨂ᨟ ᨃᨚᨐᨗᨋ᨞ ᨃᨚᨉᨛᨎᨗᨋ᨞ ᨍᨗᨂᨙᨔᨛᨀᨗ᨞ ᨍᨗᨓᨑᨘᨃᨃᨗ᨞ ᨍᨗᨆᨔᨙᨉᨙᨌᨗᨌᨗ᨞ ᨍᨗᨋᨈᨙᨌᨗᨐᨚ᨞ ᨃᨚᨉᨛᨋᨎ᨞ ᨃᨈᨎ᨞ ᨍᨗᨎᨍᨗᨆᨙᨒᨇᨙ᨞ ᨀᨗᨕᨛᨌᨗ᨟

 
— 비문 탁본

tumennzann. nkojinra, nkodynhinra, zingesyki, ziwrunkanki, zimsedecici, zinratecijo, nkodynranha, nkotanha, zinhzimelampe, kiqyci.

 
— 로마자본

더욱 난항 중에 있던 찰나 한카 교회국 출신의 한 언어학자가 여러 이본을 면밀히 분석하였다. 이윽고 마침내 4780년 7월 3일, 언어 표기 체계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비롯된 것임을 알아냈다. 해당 학자는 자신이 해독한 판본이 최초로 연구되었던 판본보다 후대의 것이라 판명했다. 사족으로 그는 자신의 모국어인 한카어와의 유사성을 줄곧 주장해왔는데, 이 해독으로 인해 그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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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문 탁본

tumennzann. nkojitja, nkodynnjitja. zimgesyki, zimrunkanki. zimsedekzici, zimtakdekzijo. nkadynntanja, nkatanja. zimzimennlannpe, kiqykji.

 
— 로마자본

안타깝게도 15년 간 계속해서 큰 진전이 없다가, 앙둔 제국이 4796년 아르토이트 징벌전쟁에 참전함에 따라 학자들에 대한 지원마저 완전히 끊겨버렸다. 더군다나 수교국이었던 미세자리아 연합아르토이트 제국에 의해 멸망하자, 앙둔 제국 내에서는 쉬조이딩갸가 불러올 역풍을 사전에 대비하자는 의견이 힘을 얻게 되었다. 믿을 만하다고 판단한 철랑로와 주아로를 제외, 3개 교통로를 폐쇄하면서 연계개발 중이던 라투키 차떰 역시 공사를 중단해 폐허로 변해버렸다.

4811년 5월 3일, 야마토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에서는 남방진출계획 제1단계를 성공시켜 라투키 반도에 6개국을 세웠으며, 발굴 지역은 에이쇼 공민공화국의 영토가 되었다. 에이쇼 공민공화국은 곳곳에서 계획도시 개발사업을 벌였으며, 개중에는 라투키 차떰의 폐허 인근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4813년 2월 13일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생물체가 출현했으며, 다행히도 인명피해는 입지 않았으나 인부들이 더 이상의 공사를 광적으로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도보게

각주

  1. 2024년 5월 18일 03시 57분 57초 기준. 미디어위키 표현식의 한계에 의해서 이 값은 정확하게 나타나기 힘들다. 정확한 값을 얻기 위해서는 사트/표준#Python 구현에서 설명하는 방법을 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디스코드 서버에는 차단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습니다.
  3. 하양과 함께 작성
  4. 카야와 함께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