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언제적 이야기인지 기억이 안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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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베니치 대공국은 남메디아의 국가이다. 본래에는 바란 연방에 의해 복속된 도시였으나 바란 내전 이후로 독립된 국가가 되었다. 인접국가인 바움 기사단과 외교관계가 굉장히 우호적인 상태이며 두 국가 대내적으로 통일을 염원하는 여론이 강하다.
명칭 | |
---|---|
바움베니치어 |
Großainzentum Wenitz |
뎅구르어 |
Benići, Bijax nweran Benići |
미코로스 아케뒤 |
Tabeniti jer Tadefeis |
바란어 |
Biezar chs nötane Weniezier |
자소크어 |
Sulahaplinatio die Venic |
크리상치아어 |
Principaté Venitsas, la Venitse |
트라벨레메 |
Venihzi, Bija x noitan Venihzi |
헤이어 |
Benic Digmuhazan(국내표준) Benits Dingvuhayan(국제표준) |
한국어 |
베니치 대공국 |
한문 |
|
안드로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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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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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부토니에 시기
베니치는 과거 부토니에 시절부터 북부의 중심이 되는 대도시였다. 베니치는 본래 세자리아 강 하류를 오다닐 수 있는 길목에서 시작되었다. 고대의 부토니에 군대가 전초기지를 세우면서 주요 거점이 되었고, 3700년 경에는 일종의 마을로 성장했다.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부토니에의 정주민들보다는 미세자리아 출신의 일부 난민들의 영향이 더 컸으며, 그들의 촌락은 산발적인 발생 양상을 띄었다. 부토니에는 미세자리아인의 촌락을 베니치에 집중시켜 관리하였고 이윽고 도시로 발전했다. 아무래도 부토니에 입장에서는 미세자리아와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원했으므로, 베니치에 여러 기술지원을 하게 되었으며, 이내 4000년 경에는 부토니에 영토가 안정되면서 큰 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바란 연방 시기
베니치는 바란 때에도 중심도시 중 하나였다. 오랜 시간 미세자리아와 전쟁을 치루다보니, 베니치는 지역상비군이 별도로 존재했다. 이것을 베니치시아 혹은 베니치 국경수비대라고 부른다. 베니치시아는 휘하 12개 사단을 두었으며, 베니치의 시의장은 국경수비장의 역할을 겸임했다. 4305년 부토니에-바란 내전 당시에는 계엄령을 무단 선포한 후 베니치시아 휘하 8개 사단이 내전에 동원된 바 있었는데, 바란 내부에서 군벌에 대한 숙청이 벌어지면서 베니치시아 또한 규모가 한 차례 줄어드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바란 멸망 직전에는 단 9개의 사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바란 내전 및 멸망 이후
바란 연방은 국가 내부의 분열로 인해 내전을 치루게 되었고, 그 여파로 인해 결국 연방 자체가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베니치 대공국 또한 바란 내전 때 독립하게 된 세력이다. 바움과 베니치는 부토니에 시기부터 남메디아 북동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국가 중에서도 강인한 편이었다. 하지만 연방에서는 은연 중에 바움과 베니치를 차별대우를 하고 라인드를 우대하였으며, 조세에도 차별을 두었기에 불만이 가득한 상태였다.
바움과 베니치는 본래 하나였던 만큼, 바란의 해체 이후에도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두 국가는 국민들 간의 상호 교류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공통된 문화권에 속했고, 같은 언어를 썼으며 민족 구성 또한 같았다. 각국의 국민들은 두 나라의 통일을 염원했다. 그러던 중, 혼란스러운 구 바란 지역의 정세에서 힘을 서로 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바움 기사단장이 정식으로 베니치 대공에게 청혼을 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서 바움과 베니치의 혼인동맹이 탄생하게 된다.
도보게
각주
- ↑ 2024년 12월 25일 09시 32분 03초 기준. 미디어위키 표현식의 한계에 의해서 이 값은 정확하게 나타나기 힘들다. 정확한 값을 얻기 위해서는 사트/표준#Python 구현에서 설명하는 방법을 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 디스코드 서버에는 차단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