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고양이사냥은 5509년 7월부터 녹사병이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을 중심으로 북메디아에서 벌어진 학살이다. 녹사병 감염자가 처음으로 발생한 쓰시마 군도에서부터 점차 퍼져나가 밀리토호스 타코뤼 왕국의 멸망까지 이어졌다.

녹사병 유행

녹사병의 발병과 전파

5509년 7월 14일, 쓰시마 군도 북섬의 야마토-타코뤼 공동구역(미코로스 아케뒤: Mijamato-Takhory Tarypey)에 주재하던 밀타 국적의 한 연구원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린다. 그는 의료계 종사자로 북메디아의 풍토병을 연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런 풍토병 중 하나에 감염된 것으로 간주하고 진료하였으나, 그 결과 병원체는 신종 바이러스임이 밝혀졌다.

연구원 본인의 요청에 따라 격리병동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차도를 지켜보기로 하였는데, 그는 감염 1주일 만에 사망하고 만다. 시신을 수습하던 방역국은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시신에 나타난 증상이 심히 끔찍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표현에 의하면 정확히 묘사하기 위해 회상하기만 해도 최소 헛구역질, 심하면 혼절할 수준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각 사람 당 정보 하나 정도는 겨우겨우 얻을 수 있었는데, 종합해보면 몸에 녹색의 거친 비늘이 잔뜩 돋은 듯한 모습이 가장 인상적인 증상으로서 해당 연구원이 생전 소속되어 있던 풍토병연구소에서는 이 새로운 병에 "녹색 죽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연구소는 학계에 논문을 발표할 요량으로 녹사병을 열심히 탐구하였다. 당연히 이들의 녹사병 연구는 유일한 감염 사례인 동료의 시신에서 샘플을 채취해 진행되었다. 만반의 방역을 갖추고 실험에 임하였기에 큰 문제점은 없어 보였으나, 불행하게도 일부 연구원들에게 추가 감염이 발생한다. 지금까지 발생한 감염자들은 성별도, 나이도, 체형도, 생활습관도 모두 달랐지만 단 하나가 동일했다. 그들은 모두, 퀼로인[3]이었다.

퀼로인 격리조치 시행

추가 감염자들도 격리병동으로 옮겨놓은 후, 밀타 국적의 코르인이었던 연구소장은 녹사병을 세계에 알리기에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모든 연구원들에게 당분간 함구토록 지시했다. 하지만 야마토 국적의 수석연구원 스기타 겐파쿠(杉田玄白)는 연구소장이 녹사병의 위험성을 알고도 그 존재 자체를 은폐하려는 줄로 오해하고, 본국에 연락을 취해 대안을 마련하려 했다.

5510년 3월, 스기타의 신고를 접수한 야마토는 정부직관으로 긴급명령을 내려 퀼로인 격리조치를 시행했다. 주 내용은 풍토병연구소와 인근 지역을 대대적으로 봉쇄하는 것이었는데, 막상 신고인인 스기타를 포함한 다수의 비 퀼로인들도 주시대상이 된다. 비 퀼로인들은 행정 착오로 착각하고 야마토 정부에 항의했으나 그들의 목소리는 묵살되었다.

최초의 비 퀼로인 감염

5510년 4월, 퀼로인 감염자 병동을 전담하며 환자들과 밀접하게 접촉해왔던 담당의사가 녹사병에 걸리더니 전례와 같이 감염 1주 만에 사망한다. 문제는 그가 야마토에서 파견된 의사, 즉 비 퀼로인이라는 사실이었다. 퀼로인 고유의 전염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의료인들은 녹사병 치료를 거부하기 시작했고, 기존의 환자들은 침대에 가만히 놓여 온몸에 비늘이 돋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치료하려는 의료인은 없고 추가 감염자는 늘어나는 상황에서, 스기타는 치료제 개발을 목적으로 샘플을 확보하려 나섰다. 이렇듯 잠재적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는 그의 독선을 제어할 만한 인물은 오로지 한 명, 연구소장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스기타의 추종자들에게 철저히 배제되어 더 이상 그 이름을 떨칠 수 없게 되었다. 대의를 위한다는 명분이었다. 스기타는 그간의 퀼로인 사망자들과, 새로운 케이스인 야마토인 의사의 시체에서 채취한 샘플들을 비교하였다. 분석 결과 믿기 어려운, 아니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맞닥뜨린 스기타와 추종자들은 회피성의 연구를 연거푸 진행하였지만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라투키 반도로의 도해

퀼로인과 비 퀼로인, 무엇이 죽음을 판가름했는가? 원론적으로, 질문부터가 잘못되었다. 애초에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는 문제가 아니었다. 스기타 겐파쿠는 스스로를 비롯하여 현재 봉쇄격리된 모든 연구원은 물론이고, 잠시 북섬을 방문하여 자신들과 접촉한 야마토 본토의 사람들까지, 머지않아 죽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해답은 바로 녹사병 바이러스의 잠복기에 있었다. 퀼로인이라는 이 가엾은 종족은 그저, 증상이 빨리 발현되는 유전 형질을 가졌을 뿐이었다. 그말인즉슨, 비 퀼로인 역시 바이러스의 잠복기가 조금 더 긴 처지에 불과해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 오히려 금방 사망한 야마토인 의사의 경우가 유난히 특이한 사례였음을 깨달은 스기타는 모든 가능성을 따져보았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최소 3일 최대 2주 이내로 낯선 질병에 의한 몰살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5510년 5월 중순, 이 시점에서 스기타는 이미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아마 녹사병의 증상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는 녹사병 바이러스의 잠복기와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해협 너머 라투키 반도로 추종자들을 몰아넣는 방법을 택했다. 북섬에서의 소동을 전파 받은 해안경비대의 제지가 있었지만, 기어코 강력한 화망을 극복한 일부 연구원은 라투키 반도의 메이와 지역과 여섯 공민공화국 곳곳으로 숨어들었다.

고양이사냥

공민공화국 끊어내기

도망자들을 추적하는데 실패한 메이와는 본국에 현 상황을 속달하며 신속한 조치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냉철한 야마토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국경을 굳게 잠그기만 했다. 혼란에 빠진 반도 각국의 주석은 녹사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하여 인민들의 외출을 엄격히 제한하였다. 벽벽마다 파스텔톤 페인트를 곱게 발라둔 교실에서는 학생들의 기세좋은 발표소리가 들리지 않고, 당 간부들이 즐겨찾던 고급식당에서 인기를 뽐내던 가수와 악단은 일자리를 잃었다. 대리석과 황금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지하철 역에는 건조한 바람이 들어차 아이러니한 황량함을 더했으며, 웅장하고 정교하게 설계된 중앙광장은 위대한 국부의 동상만을 남겨두고 오가는 사람 하나 없이 텅 비어버렸다.

안타깝게도 녹사병은 사람마냥 각고의 노력을 알아주는 존재가 아니었기에, 허술한 방역대책은 금세 유명무실해졌다. 5510년 7월, 메이와 정부가 통치능력을 상실하고 파탄하는 지경에 이르자 라투키 위기론은 심화되었다. 그러던 한편으로, 아래의 문구가 민간에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明正泉享 (메이쇼센큐)永治延和 (에이지엔와)
맑고 좋은 샘물에 몸을 적시니,
이 순간을 영원토록 늘이고 싶누나.

이 여덟 자의 시행(詩行)은, 겉보기에는 아름다운 자연을 예찬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라투키 반도 국가들의 몰락 순서를 예견하는 것으로서 민중의 공포심을 극대화하는데 이바지했다. 그리고 작자미상 유행작의 선구안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라투키의 나라들끼리 눈치게임이라도 하는 마냥 달에 하나 꼴로 쓰러져 나갔고, 5511년 6월 마지막으로 언급된 에이와 공민공화국까지 멸망하면서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야마토의 퀼로인 탄압

스기타의 연구 결과를 제대로 전해 받지 못한데다 공민공화국들과의 연락도 단절해버린 야마토는 단편적인 정보만을 입수할 수 있었고, 왜곡과 와전―어쩌면 누군가의 선동―이 거듭된 끝에 현 사태는 밀리토호스 타코뤼 왕국의 음모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퍼지게 된다. 정보에 따르면 밀타의 목적은 펠로스 타소카 자치정부 부활을 통한 텐메이 반도에서의 영향력 회복이었다. 다만 펠로스 타소카는 해체된 지 족히 천 년이 다 되어가기에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당연히 현혹되지 않을 엉터리 선전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야마토 정부는 세뇌에 상당히 능했다.

5511년 8월, 야마토는 국내에 주재 중인 밀타 국적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파랑인 계통의 코르인들은 친척 민족들로 위장하여 꽤나 많은 인구가 변을 피할 수 있었지만, 퀼로인과 옐퀼로인들은 고양이과 수인의 특색을 숨길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야마토 민중의 그릇된 분노는 그들에게 표출되었다. 고양이사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사냥감을 우롱하는 표어와 포스터가 대량으로 생산·살포되었으며, 민관군경을 가리지 않고 버젓이 학살자들이 되었다. 아래는 이 당시 만들어진 선전문구 중 일부이다.

  • 상자를 덫삼으라― 동무의 애국심을 발휘할 때이다!
  • 가증스런 수염과 발톱을 뽑아 공영권의 기치를 일떠세우자!
  • 퀼로인 절대박멸! 동무는 국권수호의 책무를 지키고 있는가?
  • 고양이 뒷덜미를 잡아 모두다 방역강국에로!

밀리토호스 타코뤼의 항의

야마토에서의 퀼로인·옐퀼로인 동포 탄압에 관한 소식을 전해들은 밀리토호스 타코뤼 왕국은 적법한 외교 절차를 거쳐 항의하였지만, 폐쇄적인 태도를 고수해온 야마토 앞에서는 쉬이 먹혀들리 없었다. 이에 독실한 뤼페 신자였던 옐 투라는 분노를 겨우 억누르며, "무고한 우리 동포를 무참히 학살하는 야마토는 결국 무수한 흑실에 속박되어 미투라오스 코뤼의 엄벌을 받게 될 것"이라며 연론을 인용하여 비판하였다. 그러나 국가무신론 정책으로 종교적 관념이 뿌리뽑힌 야마토는 옐 투라의 비판에 무관심으로 일관하였다.

에카넥의 시기어린 협조

한편, 급박하게 돌아가는 형국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에카넥 왕국이었다. 먼 옛날 타이티위그부터 시작해 밀리토호스 타코뤼 왕국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 불편한 공존을 함께하며 중앙메디아에서의 성장을 억제 당해온 에카넥은 은근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불만의 한가운데에는, 국가의 침체가 무능한 왕정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공화파가 있었다. 개중 발언권이 가장 강력한 세력은 바로 알음알음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지원을 받아온 공산주의자들이었다.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한 야마토아나키스트 코뮌 연방을 통해 공산주의자들을 움직였고, 그들은 불만의 뚜껑을 슬며시 열어젖혀 국민들로 하여금 애써 외면해왔던 에카넥의 현실을 직시하게 했다. 5512년 2월 말, 자신들의 만행이 나라를 위한 길이라고 굳게 믿은 공산주의자들은 머지않아 버림당할 줄도 모른 채, 공화국으로의 발돋움과 중앙메디아 평정을 꿈꾸며 밀타의 수도 타뤼페로 진격을 시작했다.

전면전에 돌입하다

서남쪽으로부터 시작된 느닷없는 적대행위를 보고받은 옐 투라는 당혹감을 숨길 수 없었다. 지금껏 원만한 관계를 구축했던 에카넥의 변덕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옐 투라는 세플라 고위 마법사들로 구성된 1개 사단 규모의 병력을 파병하여 진압에 나섰다. 텔레포트 전술을 위시한 밀타군은 속전속결로 에카넥의 공산주의자들을 몰아냈으나, 이상하게도 적군은 계속해서 충원되었다. 안련이 투입한 병사들이었다. 예상치 못한 인해전술을 1개 사단 병력만으로 저지하는 것은 무리였으므로, 5512년 3월 밀타군은 추가 병력을 투입하였다. 밀타군과 공산군의 결사항전은 끊일 징조가 없이 이어졌고, 이윽고 5512년 5월에 들어서서는 전면전의 양상을 띄게 되었다.

타뤼페 점령과 옐 투라 시해

그러나, 에카넥 공산군은 어디까지나 밀타의 시선을 가리기 위한 미끼요 야마토의 버리는 카드에 불과하였다. 야마토의 호의를 아무 경계심 없이 받아들인 대가는 실로 처참하여, 소왕국은 소리소문없이 무너졌다. 한편 밀타가 대부분의 병력을 서남부 방면으로 돌리고 극소수의 수도방위군만이 타뤼페에 남아있는 상황에서, 야마토의 인민해방군이 급남진해왔다. 허점을 찔린 밀타는 순식간에 수도를 점령당했으며, 수도방위군의 방어선을 쉽게 뚫어낸 인민해방군은 왕성에 침입하여 옐 투라의 집무실까지 돌격하였다. 물론 밀타에서도 사전에 조치하여 이미 옐 투라를 피신시킨 상태였으므로 금방 잡히지는 않았으나, 야마토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항공기가 격추되면서 밀타는 저항의 구심점을 잃었다.

왕국의 붕괴와 판도 재편

5512년 7월, 야마토 인민해방군은 이내 왕정체제를 붕괴시키고 밀리토호스 타코뤼 왕국의 전 영토를 유린하였다. 오랜 왕국의 역사는 막을 내렸고, 신하국인 세멘티 공국 역시 혼란에 빠졌다. 이와 더불어 지난 주노데 해협 쟁탈전에서 아르토이트 제국의 패권 상실로 세멘티-네라크뤼스 공국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세멘티는……

세멘티의 왕국 선포


5509년의 고양이사냥으로 인해 밀리토호스 타코뤼 왕국이 멸망하고, 주노데 해협 쟁탈전아르토이트 제국의 패권 상실로 이어지면서 세멘티 공국세멘티-네라크뤼스 공국이 위치한 메데마 해협은 힘의 공백이 생겼다. 아르토이트의 패권상실은 국가적인 불안을 촉발시켰으며, 밀리토호스 타코뤼의 옐 투라의 대가 끊김과 동시에 종교적 구심점인 '세멘티의 사데나' 직위 역시 사라졌다.

종주국이었던 밀리토호스 타코뤼 왕국의 멸망은 4차 국가 대재해라고 불릴만큼 충격적이었으며, 종주국으로써의 마땅한 보호 요청의 권리집행주체가 사라지자, 세멘티의 사회는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세멘티의 공작 마르메냥 윈드리드(Mármenyã Vhindrid)은 귀족 회의를 소집하였고,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린다.

세멘티의 사데나 및 그 권위가 이끄는 전승은 실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승의 중단은 강요되지 않았으며, 세멘티는 전승 유지를 위해 약속된 봉건적 의무에 대한 보답 가능성을 상실했다고 간주하였다. 현 순간부로, 세멘티는 국가 전체의 자격으로써 어떤 국가와도 봉건적 맹약을 지속할 권리 하에 놓이지 않았음을 선언한다.

세멘티 공국파랑력 2417년 5월 17일(자소크력 5512년 8월 17일), 동군연합 관계에 놓인 세멘티-네라크뤼스 공국을 합병하고, 왕령 세멘티 및 네라크뤼스 영지, 해협 세멘티 및 코르 영지로 구성된 세멘티 왕국을 선언하였다.

사건의 전말

고양이사냥이 종료된 이후인 5513년이 되어서야 녹사병의 원인이 규명되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원흉은 다름아닌 알레베데카 민주공화국의 군인들로, 주노데 해협 쟁탈전 당시 주노데 점령 기념으로 벌인 파티에서 돼지를 필요 이상으로 도살했던 것이 문제였다. 이들은 돼지고기를 충분히 먹고도 남자 보존처리를 해서 군량으로 보급하려 했으나, 아르토이트가 급습하자 들판에 급히 흩뿌려버렸다.

이렇게 방치된 돼지 사체는 잔뜩 부패하였는데, 이것을 어느 한 굶주린 흉내이리가 먹었다가 바이러스성 질병이 발현된 것이었다. 중간 숙주가 된 해당 흉내이리메데마에서 메티샤로 넘어왔다가 쓰시마 군도 북섬 인근까지 접근하였고, 이내 풍토병 연구 목적으로 샘플을 채취당했다. 이때 샘플을 채취했던 연구원이 바로 최초 감염된 퀼로인이었던 것이다.

도보게

각주

  1. 2024년 11월 4일 20시 42분 36초 기준. 미디어위키 표현식의 한계에 의해서 이 값은 정확하게 나타나기 힘들다. 정확한 값을 얻기 위해서는 사트/표준#Python 구현에서 설명하는 방법을 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디스코드 서버에는 차단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습니다.
  3. 밀리토호스 타코뤼 왕국의 고양이과 수인 종족.
  4. 하양과 함께 작성
  5. 카야와 함께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