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노데 해협 쟁탈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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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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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
5509년 2월 12일 ~ 5510년 5월 7일 | ||
장소 | ||
메데마 | ||
원인 | ||
5508년 바이수구 대순회로 인한 알레베데카 민주공화국의 대남무역 제한, 대북무역 활로 개척을 위한 주노데 해협 확보 시도 | ||
교전국 | 제국군 | 민공군 |
아르토이트 제국 남토이트 기사단 |
알레베데카 민주공화국 | |
지원 세력 | 아르토이트령 무후니아 아르토이트령 네즈니베 세멘티-네라크뤼스 공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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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정보 | ||
[ 펼치기 · 접기 ] |
지휘관 | (황제) (총사령관) (기사단장) (무후니아 총독) (네즈니베 총독) (공작) |
HUS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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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명 ?명 ?명 ?명 ?명 ?명 |
?명 |
피해 규모 | ?명 전사 ?명 전사 ?명 전사 ?명 전사 ?명 전사 ?명 전사 |
?명 전사 |
민간인 사상자 |
?명 | ?명 |
결과 | ||
아르토이트 제국의 승리 | ||
영향 | ||
아르토이트 제국·네즈니베·세멘티-네라크뤼스 공국 외 전멸 세멘티인들의 독자세력 구축 |
개요
주노데 해협 쟁탈전은 5509년 2월, 메데마의 요충지인 주노데 왕국을 두고 벌어진 아르토이트 제국과 알레베데카 민주공화국 간의 전쟁이다.
발단
전쟁 직전인 5508년 6월, 아트레니스카에서 발생한 바이수구 대순회는 사트를 충격에 빠뜨렸다. 더구나 알레베데카 민주공화국은 남쪽 국경선과 접한 티펠라트리아를 통해 아트리아와 레니스카의 국가들과 활발하게 무역해왔는데, 수많은 나라가 괴멸적인 피해를 입고 멸망해버렸기에 현실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더 이상 대남무역을 계속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이에 알레베데카 민주공화국은 대북무역을 위한 활로를 개척하려 하였으나, 메데마의 패권국인 아르토이트 제국이 탄티샤로 나가는 길목을 꽉 잡고 있어 좀처럼 쉽지 않았다. 아르토이트 제국의 영향력을 떨쳐내려면 주노데 왕국의 섬들 사이 항로로 다니는 방법 밖에 없었고, 알레베데카는 주노데 왕국과의 친선으로 해협 항로를 독점하여 이권을 챙기는 방안을 생각해냈다. 그러나, 이 원대한 계획을 눈엣가시 같이 거슬리는 아르토이트 제국이 알게 되면 여러 모로 불편할 것이었다. 알레베데카 민주공화국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기로 했다.
전개
알레베데카의 선전포고
5509년 2월 12일 알레베데카 민주공화국은, 아르토이트 제국이 메데마 맞은편에 아르토이트령 무후니아를 설치하고 무려 500여년 간 주노데 왕국의 목을 죄면서 좌지우지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주노데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는 무시되어 왔다고 국제 사회에 호소하였다. 알레베데카 민주공화국의 국정운영자동화체계 HUSAR는 지난 500여년 간 아르토이트 제국이 벌인 제국주의적인 비선정치를 힐난하였고, 주노데 왕국의 자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알레베데카 민주공화국이 원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아르토이트 제국에 선전포고하였다.
남토이트 기사단 출병
아르토이트 제국에서는 알레베데카 민주공화국의 흑심을 간파하고, 이튿날인 2월 13일 펠레마에 위치한 남토이트 기사단을 출병시켜 전쟁의 싹을 조기에 베어내려 하였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남토이트 기사단은 그 명칭과는 별개로 민간 군사 기업에 지나지 않아 아르토이트 제국 황제에 대한 충성심은 부족하다고 볼 수 있었으며, 펠레마에 파견되어 대략 700여 년이 흐르면서 별개의 준국가세력으로 발달한 지 오래였다.
소속감도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제국보다도 자신의 안위나 사랑하는 가족이나 축적한 재산이 중요했던 기사들은 군영 이탈을 일삼았고, 약 3개월이 지나 제대로 된 전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판국이 되자 결국 알레베데카의 북진을 허용하게 되었다. 분노한 황제는 5월 21일 남토이트 기사단을 공식 해산하고, 이후 군영이탈자를 샅샅이 추적하여 군법으로 처벌하였다.
주노데 왕국 점령
남토이트 기사단이 억제력을 상실하자 알레베데카 민주공화국은 파죽지세로 북진하여, 5509년 6월 1일 고대하던 주노데 왕국을 점령하였다. 그들은 벌써부터 승리를 자축하며 주노데의 돼지들을 거나하게 잡고 왕실악사들을 불러 성대한 술판을 벌였다. 이를 본 주노데의 왕은 수치스러움에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아르토이트 제국에 대한 뿌리깊은 두려움을 뒤로 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밀서를 보냈으나, 금방 들통이 나버려 자신은 포로로 수감되고 사신은 총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속령민 동원령
두고만 볼 수 없었던 아르토이트 제국은 이튿날인 6월 2일, 곧바로 속령인 아르토이트령 네즈니베와 아르토이트령 무후니아에 동원령을 선포했다. 양 속령에서 동원된 병사들은 니더벨트를 타고 주노데 왕국에 도착하여 국왕을 구출했다. 그러나 전 국토를 수복하는 데에는 예상 외로 시간이 지체되어 약 3개월이 소요되었다. 8월 17일 알레베데카 민주공화국은 아르토이트령 무후니아에 직접 폭격을 가했고, 괴텐샤우엔과 안치히 등 주요 대도시가 파괴되었다.
알레베데카 후방 급습
5510년 2월 9일 부로 주노데 왕국을 되찾은 아르토이트 제국은 민생지원에 나섰지만 3개월 간의 격전 끝에 새까매진 도심 그 어디에도 생명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주노데 왕국 인구의 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던 아르토이트인의 피해가 가장 심각하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아르토이트 제국은 황제의 근위부대를 투입하여 알레베데카 민주공화국의 후방을 급습하기로 하고, 치밀한 계획 끝에 2월 11일 작전에 돌입한다. 근위부대는 약 한 달 간 신구르 대사막을 종단하여 우회한 후 알레베데카 민주공화국에 잠입하는데까지는 성공했으나, 삼엄한 경계를 차마 뚫지 못하고 전원 사망한다. 소식을 전해들은 아르토이트 제국은 사기가 바닥을 치는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전쟁을 수행해나갔다.
HUSAR의 오작동
본디 HUSAR는 알레베데카 민주공화국의 경제 부문을 전담하는 인공지능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기능은 없었다. 그런 HUSAR에게 군령권을 위임한 것은 급변하는 전쟁 상황 속에서도 인공지능의 우수성이 변치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었지만, HUSAR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5510년 5월 7일 HUSAR는 오작동을 일으켜, 알레베데카 인민을 적으로 규정하였다. 뛰어난 식별망이 탑재되어 인종적 특징을 분명히 분간할 수 있었던 HUSAR는 단순간에 알레베데카 인민 말살 프로토콜을 수립하고, 최적의 방법을 도출해냈다. HUSAR가 쏘아올린 미사일은 알레베데카 민주공화국의 수도 바데와 최대도시 라네아카에 떨어졌는데, 문제는 알레베데카 보편공화국의 수도 신 비카에서도 난데없이 미사일을 맞았다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알레베데카 민족이 쌓아올린 모든 업적은 말살되었다.
드러난 전말
전원 사망으로 보고되었던 아르토이트 제국의 황제 근위부대는 사실 계속해서 임무를 수행 중에 있었다. 이들은 신규 배치된 기술자 등 다양한 신분으로 변장하여 2개월 간 알레베데카에서 생활하면서 HUSAR의 하드웨어가 있는 1급 국가보안시설을 장악하고, 이내 해킹에 성공하여 의도적으로 오작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나 석연찮은 점도 남아 있는데, 전후 근위부대 측에서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자신들의 사망 보고는 계획이 아니었다고 한다. 아마 이는 잠입을 눈치챈 HUSAR의 조치였던 듯하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이후 영향
아르토이트 제국은 승리를 거두기는 했으나 남토이트 기사단과 아르토이트령 무후니아를 잃으면서 펠레마와 아트리아에 영향력을 투사할 수 없게 되었고, 알레베데카 민주공화국은 원래 목적이었던 주노데 왕국은 물론이고 본국마저도 멸망하는 결말을 맞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아르토이트 제국의 힘이 약화되면서 세멘티-네라크뤼스 공국과의 봉신관계가 형식적인 형태로 전환되었다. 5509년 7월에 일어난 고양이사냥으로 인해 세멘티 공국의 종주국인 밀리토호스 타코뤼 왕국이 멸망했고 두 종주국의 약화 및 멸망을 겪은 세멘티 세력은 사실상 독자 세력이 되어버린다. 이후, 세멘티 공국의 공작 마르메냥 윈드리드가 왕을 선언하게 되면서 세멘티는 사실상 아르토이트 세력에서 벗어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