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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리온 계획 · 2차 바라리온 계획 · 사상

개요

4480년(자소크력)바란에서 발생한 바움베니치의 왕실에 대한 쿠데타를 의미한다.

전개

배경

4479년 미세자리아 연합바란의 국경분쟁으로 양국은 협정을 진행했는데, 바로 세자리아 유역에 대한 상대국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안정한 정세로 전쟁을 통한 이득을 노렸던 군벌 세력(바움베니치)는 이 결정에 단단히 분개한다. 애초에 협정 당시 북부 군벌 인사들이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왕정이 의도적으로 군벌 약화를 유도했다고 보았다. 이에 더불어 반페시온 왕정이 외국의 자소크와 교류하면서 보수적인 장교 세력들은 이를 용납하지 못했으며, 덧붙여 왕정군의 규모 확장까지 언급되자 쿠데타 논의를 시작한다. 이들은 반페시온 칙령을 무시하고 암암리에 사병화를 진행했으며, 결국 이듬해 빠른 준비를 마치고 계획을 실행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4480년 1월 10일, 군벌 쿠데타이다.

테반시온의 준비

한편 왕정의 정보기관들은 꾸준히 군벌의 의심스러운 정황을 주목하고 보고했다. 다만 의회 내부에서는 여전히 신중했고, 아무리 쿠데타가 빠르더라도 5년 내외라고 판단했다.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고작 1년 남짓한 준비는 군벌들에게도 무리였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왕정군의 새로운 통수권자였던 테반시온 바라니에는 혹여나 그들이 전격전을 통해서 빠른 전쟁을 원할 수도 있다고 보았고, 유사시를 대비해 훈련과 장비 준비를 지속했다. 당시 그는 자소크의 상임 군사고문였던 에반디 아짐[3]과의 교류를 통해서 소양을 길렀다. 왕도 내부에서도 테반시온이 신중하지 못하다고 보는 입장이 많았지만, 이미 해외의 유학 경험과 왕도의 계승자라는 부분 때문에 그 입지가 굉장했다. 따라서 방어군은 그들의 판단과 관계없이 착실하게 준비되었다. 이 시절 바라무트의 기본적인 편제가 나뉘어졌다.

쿠데타의 시작

시간이 지나 이듬해 1월 10일, 바움베니치 부대가 선봉으로 타세자리아 지방을 지나 중부로 진격한다. 바움베니치 기동대는 북부 방면의 경비대[4]를 무력화시켰고, 사전에 협의를 마친 인접 사단은 항복했다. 곧 세스라인드로 들어서는 협곡에 군대가 들어서면서 왕정은 큰 혼란에 빠졌는데, 수도를 방어할 전력은 경험이 전무한 시민군과 새롭게 양성된 왕정군, 그리고 왕실 근위대 정도였다. 반페시온 왕정은 세스라인드 의회와 항복과 항복 중 무엇을 해야할지 논의했지만 테반시온의 연설 하에 단결하면서 전쟁은 계속된다. 의외로 왕실이 항복하지 않자 바움베니치의 군대는 순서대로 세스라인드 북쪽 초입을 침공했는데, 경험이 없는 적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최정예 기동대부터 투입시킨다.

하지만 이때 에반디 아짐은 대응 계획을 세워 주요 길목들을 수월하게 방어하고, 장애물로 기병대의 진로를 틀어막는다. 이때 시내에 고립된 바움베니치 기동대는 말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고, 창으로 무장한 다수의 시민군들이 포위하자 큰 위기에 빠졌다. 당시 선발 기동대에는 바움의 가주도 있었으므로 바움베니치 가문과 상의도 없이 후방부대를 동원해 세스라인드로 진격시킨다. 이것은 왕정군에게는 예상에 없던 호재였는데, 수비군이 한 구간에 몰려들자 견인포로 집중포격을 할 수 있었고, 양 측의 군대가 통제력을 잃고 와해되면서 성공적인 방어를 수행했다. 당시 수도를 빠져나가지 않은 일부 외신들은 젊은 왕자가 노련한 군벌로부터 승리했다며 기사를 찍어냈고 단기전을 계획한 군벌은 체면을 완전히 구기며 도본 지역으로 후퇴했다. 이들은 결국 2가지 선택이 강요되었는데, 하나는 수도 포위였고, 하나는...

국경수비대의 동원

훗날 군벌의 선택은 최악으로 평가받는다. 군벌은 확실한 전쟁 우위를 위해서 타세자리아 국경수비대를 동원한다. 역사가 말해주듯, 부토니에 지역은 미세자리아 지방과 수백년의 숙적 관계였다. 그런데 고작 내전을 위해 국경수비대를 동원했으므로, 자칫하면 국가의 안위를 위협하는 처사였다. 타세자리아 국경수비대 11개 사단 중 7개 사단 즉 실질적인 전력이 모두 군벌 개인의 목적으로 남하한다. 왕정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크게 놀라지만 이미 모든 건 벌어진 일이었다. 테반시온은 휘하 사단장들을 모두 모으고 와해된 병력들을 결집시키는 한편 네번 직할령토니에 기사단에도 도움을 요청한다. 부토니에의 잔재인 두 세력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바란이 그만큼 위험한 상황에 모면했음을 반증했다. 그나마 토니에 기사단은 왕정의 요청에 따라 토니에에서 빠져나와 수도로 향했다. 다만 네번은 아무런 답장도 주지않았다.

초읽기

쿠데타군과 왕정군은 각각 모을 수 있는 최대의 전력을 집합시켰다. 이제 남은 것은 빠른 시간 내에 전쟁을 끝내는 것이었다. 본래라면 수도에서 방어전을 펼치면 유리한 왕정군이었지만, 이미 국경수비대가 자리에서 나온 이상 빠르게 전쟁을 끝내고 국경을 지키는 것이 재앙을 막을 방법이었다. 이틀 정도의 폭풍전야가 지나고 마침내 양쪽 군대는 도본의 평야에서 집결했다. 얕은 강줄기가 흐르는 평야에 집결한 양쪽 군대는 서로 한 차례 포격을 가하고는 그대로 격돌했다. 바란에서도 보기 드문 평원의 대전투였고 또 부토니에 멸망 이후 서로 정적이었던 토니에 기사단바란 왕정이 함께한 전투였다. 전투는 9시간 가량 지속되었으며, 전의를 상실한 군벌의 군대가 일찍 와해되면서 드디어 왕정군이 승리를 거머쥐게 된다.

각각 바움과 베니치의 가문장이 전투를 멈추는 뿔피리를 불었고, 그자리에서 그대로 전투가 종료되었다. 양쪽 지휘부는 서로 만났다. 그리고 바움, 베니치 가문의 장은 자신들의 목숨을 대가로 가문의 안위를 지켜줄 것을 요청했고 테반시온이 이를 받아들인다. 싸움이 모두 끝나자 그 수는 엄청나게 줄어들었으며, 특히 북부 군벌은 대부분 탈진 상태였다. 보급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싸웠던 결과였다. 그럼에도 고통스러운 내전은 끝났고,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토니에 기사단은 테반시온을 따르게 된다. 그들은 평원에서 정비하고 곧 각각 북부와 중부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바란-미세자리아 전쟁

  1. 2024년 5월 18일 18시 05분 49초 기준. 미디어위키 표현식의 한계에 의해서 이 값은 정확하게 나타나기 힘들다. 정확한 값을 얻기 위해서는 사트/표준#Python 구현에서 설명하는 방법을 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디스코드 서버에는 차단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습니다.
  3. Evandie Zúnesas Napäs Hazimm LIX
  4. 이때 전선이 무너진 것이지 병력 대다수는 건재하여 훗날 대공세 때 재정비되며 큰 전력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