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스라인드는 과거에 부토니에의 최대도시였으나, 4308년 경 일어난 바란의 대반란 이후 수도가 된다.
명칭 | |
---|---|
바란어 |
세스라인드 |
사삼오일 |
3392 |
헤이어 |
Sresrlaind |
한국어 |
세스라인드 |
안드로어 |
tptmfkdlsem |
메다어 |
ncngyfjdsug |
역사
세스라인드는 자소크력 3100년 경부터 부토니에 수도와 더불어 최대도시 중 하나였다. 중심을 가르는 협곡과 강을 제외하면 그 주변부는 모두 산맥으로 둘러쌓여 외세의 침입을 막았고, 부토니에 통일전쟁 당시에도 부토니에 황실을 지킨 성역이었다. 국가가 안정된 이후에는 강을 따라 많은 물량이 오가는 물류중심지의 역할도 병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수많은 권세가들이 탄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부토니에 의회가 이곳에 건설되었는데, 곧 바란의 반란 이후 의회가 파괴된다.
자소크력 4309년 이후 바란의 핵심 행정수도로 지정되면서 대대적인 개편과 도시계획이 이루어지고 있다.
기업
세스라인드 제철소로도 유명하다. 세스라인드 북구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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