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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앙둔 제국의 대 아르토이트 선전 포고문''' | {{인용문|'''앙둔 제국의 대 아르토이트 선전 포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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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앙둔 제국의 수교국 미세자리아 연합의 유구한 영토가 처참한 전장으로 변모한 지 어언 5일 차, 그간 곈할라 앙둔 용황 폐하께서는 깊은 슬픔을 씻어내지 못하셨다. 미세자리아 연합의 국가원수 하이디데즈 노몰라스 수석판관이 당국의 유일한 벗인 우리 제국에 병력지원을 요청해온 바, 용황 폐하께서는 아르토이트 제국에 맞서 싸울 것을 천명하시고 1차적으로 백만 대군을 출전시키기로 결정하셨다. 용황 폐하께서는 친히 출정식에 참석하시어, 앙둔 제국의 첫 대외전 참전인만큼 목숨을 아끼지 말고 맹렬히 싸워 국격을 드높이라 덧붙이셨다.|곈할라 앙둔 용황의 칙서}} | 우리 앙둔 제국의 수교국 미세자리아 연합의 유구한 영토가 처참한 전장으로 변모한 지 어언 5일 차, 그간 곈할라 앙둔 용황 폐하께서는 깊은 슬픔을 씻어내지 못하셨다. 미세자리아 연합의 국가원수 하이디데즈 노몰라스 수석판관이 당국의 유일한 벗인 우리 제국에 병력지원을 요청해온 바, 용황 폐하께서는 아르토이트 제국에 맞서 싸울 것을 천명하시고 1차적으로 백만 대군을 출전시키기로 결정하셨다. 용황 폐하께서는 친히 출정식에 참석하시어, 앙둔 제국의 첫 대외전 참전인만큼 목숨을 아끼지 말고 맹렬히 싸워 국격을 드높이라 덧붙이셨다.|곈할라 앙둔 용황의 칙서}} | ||
2022년 7월 31일 (일) 05:56 판
+ ![]() Agdun Exurop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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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지리와 행정구역 | 문화 | ||
경제 | 정치와 군사 | 외교 |
+ 아르토이트 징벌전쟁 Arteutisch Bestrafungskrie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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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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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_그림_설명}}} | ||
날짜 | ||
4796년 3월 11일~ | ||
장소 | ||
남메디아 북동부 미세자리아 | ||
원인 | ||
미세자리아 연합의 아르토이트 제국 모욕 미세자리아인을 포함한 아르토이트인 구원 | ||
교전국 | 아르토이트 제국 | 미세자리아 동맹 |
지원 세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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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정보 | ||
[ 펼치기 · 접기 ] |
지휘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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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
피해 규모 | ||
민간인 사상자 |
?명 희생 | ?명 희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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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 | ||
개요
아르토이트 제국 건국 이후 아르토이트인이라는 국가적인 정체성 재확립을 명분으로 아르토이트 제국이 아르토이트인 보호라는 명분으로 미세자리아 연합을 침공하여 시작된 전쟁.
배경
남미세자리아 부족공화국은 바란 연방의 멸망 이후로 베니치 대공국의 지원을 힘입어 자신들의 동족이나 다름없었던 미세자리아 연합의 구성원들을 노예로 잡아다 팔면서 경제를 유지하였다. 이런 연유로, 남미세자리아 부족공화국은 같은 미세자리아인국가인 미세자리아 연합보다 부토니에 계통인 다른 국가들과 가까웠고, 아르토이트 왕국 개국시 미세자리아 연합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르토이트 연합에 흡수되는 길을 선택하였다. 아르토이트 왕국이 바란 연방의 유산을 정리하고 신정체성을 찾을 때, 남미세자리아 부족공화국의 왕국 참여는 이 정체성 확립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는데, 아르토이트 왕국의 신민이라면 민족에 상관없이 아르토이트인이라는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구실이 되었다.
아르토이트 제국의 제국 천명 이후로도, 미세자리아 연합은 남미세자리아 부족공화국이 있었던 세자리아 강 유역을 지속적으로 반환하라고 요구하였다.[3] 그러나, 아르토이트 제국은 미세자리아 연합의 이런 요구를 묵살했을 뿐만 아니라, 미세자리아인 전체를 아르토이트인으로 재규정하여 아르토이트인 구원이라는 명분으로 미세자리아 연합에 대한 확장주의적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다.
발단
양 국의 긴장감이 높아지던 와중, 미세자리아 연합에서는 자신들의 빈곤의 이유를 아르토이트 제국의 전신이었던 베니치 대공국과 남미세자리아 부족공화국의 탓으로 돌린다. 전쟁 명분을 찾고 있었던 아르토이트 제국은 이것을 국가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 미세자리아 연합 징벌을 목표로 미세자리아 연합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다.
“ 아르토이트 징벌전쟁 선포문
아국, 아르토이트 제국은 제국원력 96년 3월 11일 15시 00분을 기점으로 미세자리아 연합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는 바입니다.
미세자리아 연합에서는 구 바란 연방의 멸망 이후, 자국민들의 삶이 고달파진 것에 대한 이유를 아르토이트의 전신인 베니치와 남미세자리아에 존재한 적이 없는 노예제도에서 찾았으며, 이는 지금까지 아르토이트에 대한 큰 모욕으로 받아들어졌습니다.
아르토이트는 미세자리아의 국가적 모욕에 대한 징벌과 미세자리아인을 비롯한 아르토이트인에 대한 구원을 이유로 미세자리아 연방에 대한 전쟁을 선포합니다.
아르토이트는 이를 통해 한 번 더 견고해질 것이니, 신은 우리를 보우하소서(So wahr uns Gott helfen)!
” — 하인리히 폰 아이진아르토이트, 만인의 황제.
개전
세자리아 강 북부 유역 공습
북부 미세자리아 반란
미세자리아 북부의 노동자들이 열악한 대우를 견디지 못하고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미세자리아군은 마비되기에 이른다.
앙둔 제국의 참전
아르토이트 제국의 미세자리아 연합 침공은 미세자리아 연합의 수교국인 앙둔 제국의 반발을 불러왔다. 앙둔 제국의 국가적 프로젝트인 대외 해저 교통로의 종착지 중 하나가 미세자리아 연합일 정도로 앙둔 제국은 미세자리아 연합과의 교류를 중요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전쟁으로 인해 미세자리아 연합의 안위가 불분명해지면서, 앙둔 제국의 국가적인 프로젝트 무산과 우호국 상실을 우려한 앙둔 제국은 아르토이트 제국에게 선전포고를 하며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 앙둔 제국의 대 아르토이트 선전 포고문
우리 앙둔 제국의 수교국 미세자리아 연합의 유구한 영토가 처참한 전장으로 변모한 지 어언 5일 차, 그간 곈할라 앙둔 용황 폐하께서는 깊은 슬픔을 씻어내지 못하셨다. 미세자리아 연합의 국가원수 하이디데즈 노몰라스 수석판관이 당국의 유일한 벗인 우리 제국에 병력지원을 요청해온 바, 용황 폐하께서는 아르토이트 제국에 맞서 싸울 것을 천명하시고 1차적으로 백만 대군을 출전시키기로 결정하셨다. 용황 폐하께서는 친히 출정식에 참석하시어, 앙둔 제국의 첫 대외전 참전인만큼 목숨을 아끼지 말고 맹렬히 싸워 국격을 드높이라 덧붙이셨다.
” — 곈할라 앙둔 용황의 칙서
앙둔 제국은 아르토이트 제국의 공격으로 와해 직전에 몰린 미세자리아 연합의 군 통수권을 인수하였다.[4] 이로써, 미세자리아 연합을 두고 아르토이트 제국과 앙둔 제국의 전격전이 시작되었다.
전면전
아르토이트 제국의 대 미세자리아 연합 경고문
“ 국가방위군이 미세자리아인들에게 알림
제국 국가방위군은 개전 이후 5주차가 되는 이 시점, 제국원력 96년 4월 18일 1000에 미세자리아의 신민들에게 알린다. 현재 미세자리아 동부 해안에 앙둔 제국의 것으로 추정되는 병력을 포착, 이들의 국가방위군의 판처 사단을 공격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는 아르토이트를 수호하는 국가방위군에 대한 명백한 적대행위로 판단되었으며, 그에 따라 2시간 내에 해당 지역으로 포병대를 이용한 집중 포격을 가할 예정이니 즉시 피난하라.
예정된 포격 술식은 다음과 같다:
- 1차 포격: 빙결 술식을 이용해 적군의 이동가능성을 완전차단할 것.
- 2차 포격: 관통 술식을 이용해 적군의 구동부와 관절을 절단할 것.
- 3차 포격: 화염 술식을 이용해 무차별 폭격으로 확인사살할 것.집중 포격은 2시간 뒤, 1200으로 예정되어 있으니 즉시 피난하라. 포격은 적군의 무력화가 확인될 때까지 멈추지 않을 예정이며, 30분 마다 포격을 반복할 예정이다.
피난하기에 마땅한 곳이 없다면 제국군에게 피난 의사를 밝혀라. 제국은 미세자리아 난민 개개인을 신민 하나하나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으며, 그 어떤 불이익도 주어지지 않을 것을 보장한다.
다시 알린다. 미세자리아인은 지금 즉시 피난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