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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20일 (월) 00:45 판
앙둔 제국 | 이렘나 철랑대 |
4485년 4월 16일 수교 ~ (현재) |
개요
앙둔 제국과 이렘나 철랑대 간의 관계를 다루는 문서. 국호 순서는 가나다순이다.
명칭 | |
---|---|
한국어 |
앙둔(제국)-이렘나(철랑대) 관계, 앙철관계, 이렘나(철랑대)-앙둔(제국) 관계, 철앙관계 |
바샨니어 |
Irnikiy-Anniniy Shaar |
이렘나어 |
î'Suriy k'Iremna-k'Antun |
헤이어 |
Agdun-Iremna Osvwar |
영어 |
Angdun-Iremna Relations |
일본어 |
アンドゥン-イレームナ関係, 央鉄関係 |
한문 |
鐵央關係 |
단순 비교
앙둔 제국 | 이렘나 철랑대 | |
---|---|---|
위치 | 메티샤 깅바단 초호 | 북메디아 북부 반도지역, 셰헤카사 제도, 실리킬 숲 |
판[3] | 앙둔 판 | 북메디아 판 |
면적 | 1,375,621㎢ | |
인구 | 8,691,024명(4586년) | 4,810,282명(4610년) |
수도 | 앙두노르 | 셀니키히 |
공용어 | 헤이어 | 이렘나어, 바샨니어 |
공용문자 | 투컁 문자 | 바샨니 문자 |
국가원수 | 켸피투(용황) | 철랑대장(기사단장) |
정치 | 전제군주제, 기업국가 | 일체군국주의, 기병과두의회 |
시간대 | ASN+10~11 | ASN+2, 4, 5 |
건국 | 1999년 3월 19일 | 3313년 4월 11일 |
최대종교 | 멤블로디 100% | 파랑전승-시에다니파 37% |
통화 | 러뭉(Ł) | 이렘나 트리키라(Ɨ) |
기년법 | 자소크력 | |
회유력 | 파랑력 |
발단
앙둔 제국
앙둔 제국이 건국되기 전, 전통 갑인 문화에서는 떼바라는 마법이 존재했다. 현재 앙둔 제국의 치세 하에서는 대규모 척결 사업이 추진된 탓에 세가 크게 줄었으나 암암리에 전승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앙둔 제국의 권역을 벗어나 메티샤 대양을 표류하는 떼바술사 공동체의 존재도 확인된 바 있다. 간혹 앙둔 제국의 본격적인 육상 진출 이전에 기록된 타국의 문헌에서 갑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언급되고는 하는데 대부분 밀입국한 떼바술사로 여겨지나, 진위 여부를 밝히기에는 어렵다.
이렘나 철랑대
북메디아의 이렘나 철랑대는 메티샤 대양에 접한, 즉 앙둔 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국가이다. 그 탓에 문헌 상 테바술사로 추정되는 기록이 2건 발견된다.
(수정 및 추가 부탁드립니다.)
전개
제4천년기
날짜 | 사건 |
---|---|
3428년 1월 4일 | 이렘나 기사단국 북부 기사단 지역의 해안에서 발견된 외래인을 하스투라페흐로 압송하여 심문한 뒤 자의에 따라 철각에 공양 |
3743년 | 아르세른 이렘나 기사단이 체나냐 지방의 동부 해안에 상륙한 외래인과 이야기한 뒤, 전술 고문 역할을 부여 |
3752년 | 아르세른 이렘나 기사단의 횡포가 잇따르자 엘레르디 왕국이 개입하기로 결정 |
3755년 | 아르세른 이렘나 기사단 해체 |
3773년 | 이렘나 내전 종전 |
“ 재임 y년 m월 d일[4], 북부 기사단 지역의 해안에서 발견된 외래인을 하스투라페흐로 압송하여 심문한 뒤 자의에 따라 철각에 공양함.
북부 기사단 지역 해안의 주민들이, 정체모를 외래인[5]이 이렘나의 땅에 올라온 것을 발견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하스투라페흐의 철각으로 압송하여, 철랑대장의 심문을 받게 하였다.
기사단장께서 이르시기를, "그대는 이렘나의 말을 할 줄 아는구나. 그대의 마음을 파랑에 가까이 한 것인가, 힘을 빌린 것인가?" 라고 하셨다.
외래인이 대답하기를, "빌려드릴 수 있는 것이기에, 보여드린 것이옵니다. 기사단장이시여, 그대의 힘을 가까이 하시기 바라나이다."하고 아뢰었다.
기사단장께서 이어서 이르시기를, "그러나, 철각 위에 비치는 별자리는 단 하나의 성좌를 가리킬 뿐. 엘레르디께서는 우리의 선각자이시니 그들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하셨다.
외래인이 대답하기를, "분명 엘레르디의 힘은 강력하오나, 그들은 그저 관조자에 지나지 않을 뿐이옵니다. 반면 그대는 역사이시니, 머금은 힘을 그 파도에 실어 펼치소서. 철랑대장이시여, 이 몸을 철각에 바치겠사오니 삼가치 마시기를 원하나이다."하고 아뢰었다.
이에 기사단장께서는 외래인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기셨다. 외래인은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아니하고 궤변을 계속 덧붙이고자 하였으나, 기사단장께서는 뛰어난 식견으로 속내를 간파하시고 그를 포박하라 명하셨다. 외래인은 폭언하며 거세게 저항하였으나 기사단의 힘에 전혀 대적하지 못하였다.
기사단장께서 이르시기를, "바다사람이여, 그대가 원하는 대로 철각의 피가 되어 그대의 힘을 보이거라. 그것이 우리가, 그리고 네 스스로가 허락한 운명일지니."하시고, 외래인에게는 더 이상의 대답조차도 허락하지 아니하셨다.
기사들은 포박한 외래인을 하스투라페흐의 철각 위로 끌어냈다. 외래인은 스스로가 입으로 뱉은 바에 따라, 이렘나인들의 무수한 시선 아래에서 제 몸을 주술의 제물로 공양하였다. 그 피가 철각 위에 뿌려지는 순간, 거센 울림이 퍼져나갔으나 그 누구도 이 기이한 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민간에서는 기사단장의 단호한 결정을 지지하는 반면, 더 강력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를 기사단장의 잔학함으로 날려버렸다고 생각하여 반감을 가지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 — 전승의 기록
27대 기사단장 r'Antzrhachte m'Azakiriyl
“ yy년[6], 아르세른 이렘나 기사단이 체나냐 지방의 동부 해안에 상륙한 외래인과 이야기한 뒤, 전술 고문 역할을 줌.
내전[7]이 지속되면서, 우리 엘레르디 왕국의 나누어진 아이, n'Arkun re'Kanturap 기사단장이 이끄는 아르세른 이렘나 기사단은 이렘나의 동부 및 중북부 지방을 차지한 커다란 무리가 되었다.
체나냐 지방의 동쪽 해안에서 외래인[8]이 이렘나의 땅에 올라왔다. 그녀는 기사단과 만났고, 전술 고문이 되기를 바랐다. 기사단장은 300여년 전 외래인의 전설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는 정말이지 대단한 기회이며 선조의 멍청함을 되풀이해선 안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에 따라 기사단장은 외래인의 말을 좋게 받아들이고 기사단의 전술 고문 역할을 주었다.
yy+9년[9], 아르세른 이렘나 기사단의 그릇된 일탈이 심각해짐에 따라 우리 엘레르디 왕국이 개입하기로 결정함.
내전[7]이 지속되면서, 우리 엘레르디 왕국이 아끼고 보살피며 n'Arkun re'Kanturap 기사단장이 이끄는 아르세른 이렘나 기사단은 이렘나의 7할을 차지하여 국내에서 으뜸가는 무리가 되었다.
지난 yy년 전술 고문 역할을 받은 "체나냐의 바다사람"은 혈법을 열심히 익힌 끝에, 생명을 제물로 공양하여 특수한 기운을 뿜는 재주를 부릴 수 있었다. 이 특수한 기운은 사람의 판단력과 고양감을 향상시켰으며, 지능을 단순간에 끌어올렸다.[10] 그녀의 힘으로 기사단은 이렘나의 영토 7할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군사적 승리의 대가로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으며, 단순한 짐승의 범주를 벗어나 바샨니인은 물론이요 이렘나인마저도 공양 제물로 삼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이와 같은 잔학성을 샅샅이 목격한 우리 엘레르디 왕국은 깊디깊은 슬픔을 금치 못하고, 소중하기 그지없는 아르세른 이렘나 기사단의 올곧은 미래를 위해 직접 개입하기로 결정하였다.
yy+11년[11], 아르세른 이렘나 기사단을 해체함.
우리 엘레르디 왕국이 아끼고 보살피며 n'Arkun re'Kanturap 기사단장이 이끌었던 아르세른 이렘나 기사단을 해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전[7]은 지속되고 있으므로, 우리 엘레르디 왕국은 후일을 몹시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련의 사건에 따른 여파로 이렘나 동부지방은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나 체나냐 지방의 바샨니인은 고작 전체 인구의 2-3할 수준에 미치는 것으로 파악되며, 타 지역의 7할에 비하면 그 피해가 극심하다. 바샨니인의 울분이 그 어느 때보다 작렬하는 심각한 상황이므로 우리 엘레르디 왕국에서는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12]
더욱 심정이 원통한 것은, 기사단을 아프게 하고 끝내 무너뜨린 끔찍한 보균자 "체나냐의 바다사람"은 그 정체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그리고 기사단이 해체하기 2년 전에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현재까지 파악되는 것은 그녀가 기사단내 비밀 사조직을 결성하여 10여년에 걸쳐 덩치를 불렸으며, 이간질을 통해 내분을 일으키고는 홀로 사라졌다는 기사들의 증언 뿐이다.[13]
” — 별에 잠든 기록, 엘레르디 왕국
제5천년기
날짜 | 사건 |
---|---|
4472년 6월 3일 | 앙둔 제국, 육상 진출 결정 |
4481년 | 이렘나 철랑대의 셰헤카사 제도, 앙둔 제국의 세력과 접촉 |
4485년 | 앙둔 제국의 사절단이 이렘나 철랑대 해역에 진입 |
4485년 4월 16일 | 이렘나 철랑대와 앙둔 제국이 수교 |
4630년 4월 14일 | 앙둔 제국 18대 켸피투 두그불르 앙둔 붕어 |
4630년 5월 4일 | 앙둔 제국 19대 켸피투 곈할라 앙둔 즉위 |
4632년 1월 7일 | 앙둔 제국과 이렘나 철랑대, 이렘나-앙둔 산업무역협정 체결 |
앙둔 제국의 본격적인 육상 진출 이후, 메티샤의 서부에 위치한 이렘나 철랑대는 앙둔 제국과 접촉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존재는 4481년경 셰헤카사 제도에 알려졌으나, 이렘나의 본국에는 전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4485년, 앙둔 제국의 사절단이 아무런 무장도 없이 이렘나 해역으로 진입했고[14], 적의가 없다는 것을 판단한 이렘나의 520대 기사단장 s'Asakrach p'Zeostreva는 앙둔 제국에 답사를 보내었다. 동년 4월 16일, 양국은 국교를 맺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렘나 철랑대는 앙둔 제국이 체나냐의 바다사람과 같은 갑인의 정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은 이렘나 철랑대 사회 전반에 큰 혼란을 가져왔고, 그것은 갑인들에 대한 공포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다행히도, 앙둔 제국의 외교관인 다넹치 일루군Danegci Zilugrun의 화려한 언변으로 외교적인 마찰로 이어지는 것을 막았으며, 오히려 앙둔 제국에 대한 이렘나 철랑대의 외교적인 인식이 좋아지는 계기가 되었다.[15]
4630년, 앙둔 제국에서는 곈할라 앙둔이 19대 켸피투로 즉위했다. 그는 능동적인 육상 진출 정책을 펼쳐, 수교국인 이렘나 철랑대와의 협상을 곧바로 시도하였다. 2년에 걸친 의논 끝에 이렘나-앙둔 산업무역협정을 체결하는데 성공하였으며, 양국은 서로의 지리적 특성을 이용하여 무역과 교섭을 실행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고하길 바란다.
여담
도보게
이렘나 철랑대 | 역사 | 지리 및 행정구역 | 문화 | 종교 | 경제 | 외교 | 종족 | 언어 | 생태와 생물군계 | 마법 | 전쟁 | |
---|---|
이렘나 3차 내전 | 셰헤카사 제도 | 네라다 공민공화국 | |
엘레르디 왕국 |
+ 앙둔 제국의 대외 관계 | |
---|---|
Jaixam! 회유력 3759년 3월 7일[1] |
Aniska! 사력 5758년 3월 7일[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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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 1.0 1.1 1.2 2024년 11월 5일 11시 28분 30초 기준. 미디어위키 표현식의 한계에 의해서 이 값은 정확하게 나타나기 힘들다. 정확한 값을 얻기 위해서는 사트/표준#Python 구현에서 설명하는 방법을 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 디스코드 서버에는 차단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습니다.
- ↑ 아직 확정된 설정이 아님을 주의.
- ↑ 자소크력 3428년 1월 4일
- ↑ 원문에는 s'Asi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렘나어로 "바다사람"이라는 뜻이다.
- ↑ 자소크력 3743년
- ↑ 7.0 7.1 7.2 자소크력 3714년~3773년
- ↑ 원문에는 s'Asi k'Tzenanya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렘나어로 "체나냐의 바다사람"이라는 뜻.)
- ↑ 자소크력 3752년
- ↑ 실상은 큰 연관관계가 없으며, 흡입성 마약의 원료를 지속적으로 별도 조달하면서 겉으로만 꾸며낸 것으로 밝혀졌다.
- ↑ 자소크력 3755년
- ↑ 이것은 다른 복합적인 문제와 함께 3824년 바샨니 반란의 주요한 원인이 된다.
- ↑ 이렘나 철랑대에서는 "체나냐의 바다사람"이 갑인인 것조차 앙둔 제국의 육상 진출 이후에나 파악할 수 있었다. 참고로 "알 수 없는 마법연맹"에 따르면, 체나냐의 바다사람은 아직 죽지 않고 이 세계 어딘가에 잠복해있다고 한다.
- ↑ 이렘나의 근해는 재폭풍 시 수몰된 구 영토로, 과거의 잔해 때문에 항해하기에 부적절한 해역이다.
- ↑ 그러나, 모든 이렘나-바샨니인들이 이에 따랐던 것은 아니었다. 체나냐 지역의 유민들이 많았던 아르세른의 방벽과 바샨니인들의 분포가 높은 니크비츠 산림에서는 소요사태가 일어났고, 해당 지역의 기사대 대표는 이 안건의 상정이 있었던 철각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