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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투라-페투치아-레조넌스 제국
𝐓𝐚𝐢𝐧𝐚𝐭𝐢𝐨 𝐝𝐢𝐞 𝐏𝐢𝐧𝐢𝐭𝐮𝐫𝐚-𝐏𝐞𝐭𝐮𝐜𝐢𝐚-𝐑𝐞𝐳𝐨𝐧𝐲𝐧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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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시띵교(자소크어: Lofanùque die Sitinn)피페레 제국의 국교이자 최대종교이다. 시띵교는 자소크력 기준 2천년기에 태어난 인물인 시띵에 의해 창시된 아트리아 문화권의 종교로 시띵교는 선지자 시띵의 가르침에 따라서 시띵교에서 말하는 진리인 세칙과 하나되어 괴로움에서 벗어나 영원한 존재가 되는것을 가르치는 종교이다. 시띵교는 개조(開祖)인 선지자 시띵과 여러 가르침들이 내려오며 계승·발전된 지혜, 그리고 이를 따르는 사람들인 미수 아미드(Μισυ αμιδ), 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인 미츠라그 아미드(Μιτσραγυε αμιδ)로 4가지로 구성된것이 시띵교이다. 대체로 시띵과 지혜는 통틀어 광명(Πιτσισ)이라 하고 가르치는 사람과 따르는 사람을 통틀어 두 아미드,β΄ Α(β΄ αμιδ) 라고 한다.

시띵교는 사트 내에서도 거대한 종교중 하나이며, 신자 수는 약 1억명이 조금 넘는다. 다른 종교와 비교하자면, 다신론적인 종교들인 어스몬 신앙이나 멤블로디, 페스냐교와 달리 유일신론적이며 보편정교복소교처럼 절대자가 존재하는 종교가 아니고[1], 불가지론적인 운론과는 결을 달리한다. 시띵교는 세칙을 절대적 진리로서 가르치므로 유일신론적인 종교에 속한다. 다만, 시띵교는 불가지론적인 종교들을 제외하면 아트리아 문화권시트리나 강 유역에서 발생한 독자적인 종교계통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다른 종교와 교류가 확인되는 시점은 시띵의 존재의 한참 이후이기 때문이다.

시띵교의 주요 교리는 삶에 있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세칙일체되는것을 목적으로 하는 종교이다. 처음에는 세칙이 그저 시띵이 말한 지헤의 추상적 개념으로 여겨졌으나 그 실체를 발견하고 음율마법으로 존재를 증명하며 종교와 마법이 상호보완적으로 동시에 진화하는 유착적인 관계가 탄생하기도 하였다.

교리

시띵교는 근본적으로 세칙과 하나가 되는것이 목표인 종교이다. 처음에는 시띵과 그의 제자들이었으나, 시간이 흐르고 제자들의 후계자인 아도르카가 교권을 가지고 전제군주적인 정치질서를 만듦과 동시에 기존의 혼란시대때 연구되던 지식들이 융합되고 세칙에 대한 진지한 이론과 연구가 발전을 이루며 지금의 시띵, 지혜, 가르치는자와 따르는자라는 지금의 큰 4가지의 질서로서 제편되어 지금에 이른다. 아래는 4가지의 큰 질서의 세부적인 이론과 내용이다.

시띵

사트.svg 자세한 내용은 시띵(선지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시띵은 시트리나 강과 페네르 강의 사이, 마시마카시온의 히모크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때 하늘의 별이 유독 빛나고 그 집을 비추니, 태양이 여러개가 있는 것 같았다.

 
— 제국사기 주석.

시띵(피페레어:Σιδδινγ)은 시띵교를 창시한 개조(開祖)로, 지금의 로토시아 부근의 고대마을 히모크(Ηεμοκ)[2]에서 태어난 인물로 당시 아주 소수민족이었던 인간으로 태어난 사람이다. 그는 어릴때부터 세칙을 깨우치고 수행을 위한 여행을 떠나 포교활동을 벌이며 세칙을 널리 알렸고, 그의 제자들에게 지혜를 남기고 로토시아에서 승천하였다.

지혜

지혜(Σοπεα)란 세칙으로 가는 길이자 세칙 그 자체이다.

지혜(Σοπεα)는 시띵교에서 세칙과 일체가 되기 위하여 연구하는 학문이자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위대한 선지자, 스승들이 남긴 가르침을 계승한 것으로, 시띵교의 주요 교리를 이루는 이론이다.

세칙

사트.svg 자세한 내용은 세칙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세칙은 모든 고통으로부터의 해방된 존재이다.

세칙은 이 세상인 이데아와 달리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이 세상의 절대적 진리로서, 관념론적으로는 세칙은 일체화 되어야 하는 대상으로서 이데아로부터 독립적이고, 또 시간이 없으며 눈에 보이는것과 보이지 않는것으로 나누자면 세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세칙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우리 주변에는 언제나 세칙이 존재하며 이것을 인지하기 위해 세칙이 존재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알고 알기위해 수행하며 이것을 깨닳아 나 자신이 세칙과 가까워진다면 그것은 세칙과 하나가 되어가는 길인 것이다.

세칙은 비록 눈에 보이지 않고, 피부로 느껴지지도 않으며 대화할 수도 없으나 음율마법을 통해 세칙을 존재론적으로 에너지로 끌어와 사용함으로서 존재함을 증명할 수 있으며 후술될 괴로움(번뇌)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세칙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번뇌

번뇌란 괴로움이다. 괴로움은 세칙으로 가는 길을 방해한다..

번뇌란 세칙과 일체가 되는것을 방해하는 모든것이다. 그것은 눈에 보일수도 있고,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번뇌는 근본적으로 괴로움이다. 번뇌란 괴로움이므로 모든 삶에 걸쳐서 번뇌는 나 자신에게 모든 영향을 끼친다. 또한 번뇌란 후험적인 것이라, 선천적으로 나에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삶을 시작할때부터 어떠한 형태로든 나에게 괴로움이란 것이 오기 때문에 번뇌가 완전히 없는 상태란 세칙과 일체가 된 상태가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세칙론에서, 이데아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것으로 구분할때, 번뇌는 대체로 보이는 것이 많지만 실제로는 보이는것과 보이지 않는것 모든 형태로 존재한다. 번뇌는 살아갈수록,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나에게 쌓여가고 번뇌가 쌓여갈수록 세칙과는 멀어지게 된다. 번뇌는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쌓이게 되는데 심적으로는 보이지 않는것이, 육체적으로는 보이는 것이 쌓이게 된다.

번뇌, 즉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선 단 하나의 선택지 뿐인데, 바로 세칙과 일체가 되는 것이다. 만일 세칙과 일체가 되는것이 아닌, 삶이 끝나는 죽음 또한 번뇌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라 할 수 있으나 이것은 오해이다. 죽음 또한 괴로움에 의한 번뇌인 것이다. 따라서 번뇌는 나를 벼랑 끝으로 몰고가는 나에게 해로운 것이다. 따라서 번뇌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세칙과 가까워지는 길 뿐이다.

이데아

이데아(Ιδεα)란 내가 눈뜬 이 세상이다, 이 세상엔 빛과 생명이 가득하지만 그 생명의 수 만큼이나 괴로움도 가득하구나!.

 
— 로토시아의 시 발췌.

이데아(Ιδεα)란 이 세상, 즉 내가 밟고있는 이 땅과 세상을 뜻한다. 이데아는 모든 생명이 태어나는 공간이자 괴로움인 번뇌가 존재하는 공간이다. 이데아는 세칙과 대비되는 공간으로서 세칙은 이데아와 달리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이데아의 모든 공간과 시간에 걸쳐 세칙은 공존한다. 비록 보이거나, 잡히진 않지만 이데아와 세칙은 언제나 공존하는 관계에 있다.

이데아는 악한 존재는 아니지만, 이데아에서 안주한다면 끝내 번뇌가 나를 죽음으로 몰아가기 때문에 이데아에서 안주한다면 죽음으로 그 삶을 귀결지을 수 밖에 없다. 죽음이 죄를 짓는것은 아니지만 끝내 괴로움으로 산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데아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데아는 세칙론에서 세상을 보이는것과 보이지 않는것으로 나눌때, 보이는것에 속한다. 이데아는 보이는 것이다. 괴로움인 번뇌가 존재하는 공간인 이데아에선 세칙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세칙과 자연적으로 상호작용하진 않는다. 하지만 음율마법을 창시한 시띵에 의하여 세칙과 이데아가 서로 상호작용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가 지금의 마법인 것이다. 이데아에선 번뇌가 언제나 존재하므로, 그 번뇌를 잊어야 하는데, 그것을 잊기 위하여 무념을 수련한다. 이데아에서 무념을 통해 세칙에 가까워진다면 이데아에 속해있는 그 존재는 세칙에 속해지는 것이고 완전히 세칙에 속해지는 것을 일체, 즉 이데아에서 승천한다고 말한다.

경(Λεγυε)이란 가르침이다. 가르침은 시띵으로부터, 제자를 거쳐 역대 아도르카와 위대한 수도사와 스승들에게 전수받아 계승되어온 것이다. 따라서 경은 시간에 따라서 더욱 그 양이 늘어난다. 경은 글의 형태로 존재한다. 처음에는 구전으로 전해졌으나 이것이 글로 쓰여지고. 체계화되며 지금에 이른다.

경의 형태는 다양하다. 아무리 짧거나 아무리 길어도 모두 경으로 친다. 대화문으로 구성된 대화록, 모두가 지켜야할 율법의 형태인 규율록, 여러 시를 엮은 시집, 여러 구전들이 이야기로 전해지는 고사록, 그리고 격언을 엮은 형태인 논어록이 주된 형태이다. 대화록의 대표적인 경은 시띵의 말씀이 있고, 규율록의 대표적인 경은 육조신심, 시집의 대표적인 경은 로토시아의 시셀렌드리얼의 시가 있고, 고사록의 대표적인 경은 에겐도로스의 우화, 제국사기 주석[3]등이 있다. 논어록의 대표적인 서적으론 아이콘테아의 격언이 있으나 아도르카가 안식(安息)[4]할때 그의 생전 격언을 엮은 격언집이 나오는데, 이것 또한 논어록에 포함된다. 요절하여 그 이야기가 너무 짧은 경우는 경이 없는 경우가 있다.

두 아미드

두 아미드란 시띵교에서 가르치는 자와 따르는 자를 의미한다. 가르치는 자는 미츠라그 아미드, 따르는 자는 미수 아미드이다. 미츠라그 아미드는 미수 아미드를 바른 길로 인도하여 번뇌에 사로잡혀 세칙을 잊지 않도록 격려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또한 두 아미드에선 삶에 있어서 시띵교의 교리를 위하여 실천과 자신의 삶에서 유의미함이 있을 수 있도록 하라는 가르침을 이행하기 위한 삶 이론이 있다.

미츠라그 아미드

미츠라그 아미드(Μιτσραγυε αμιδ)는 가르치는 자이다. 가르치는 자는 수직적 구조로서 가장 최상에 시띵의 후계자, 제자들의 후계자인 아도르카가 있으며 모든 교도권을 지닌다.

미츠라그 아미드는 따르는 사람들인 미수 아미드(Μισυ αμιδ)에게 가치있는 삶을 제시하고 번뇌로부터 멀어지게 하여 모든 이로 하여금 번뇌로부터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해방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무가 존재한다.

삶(Μασ)이란 생명을 가지고 살아있는 상태이다. 이 상태는 인지하고 느끼며 의식을 가지고 있는것을 삶이라 한다. 식물은 의식이 없으므로 삶을 사는것이 아니다.

삶은 이데아에서의 삶이 주된 이론을 차지한다. 왜냐하면 세칙에서 삶은 딱히 중요하지 않다. 모든것을 초월해 존재하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삶의 모든 순간에 있어서 번뇌의 영향을 계속 받는다. 번뇌는 삶을 끝내고 나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번뇌로부터 삶은 멀어지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며 세칙을 알기 위해선 번뇌로부터 멀어지는게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삶은 번뇌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투쟁이다. 경에서, 삶은 번뇌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선 바른 일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그 바른일은 다양하다.

물론 승천하지 않는 이상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삶은 절대적이지 않다, 상대적이다. 죽음은 근본적으로 번뇌이지만 번뇌로 끝날 삶이라도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따라 그는 이데아에서 기억될 수 있다. 죽음 이후가 어떤지는 완전히 알 수 없으나 삶은 대체로 기억되거나 추억되며 "가치가 존재하는 삶"이 바람직한 형태로서 가치가 있어야 번뇌로서 멀어지고 괴로움이 줄어든다 말한다.

따라서, 번뇌로서 멀어지고 가치가 존재하는 삶을 위하여, 가치를 가지고 이를 실현하는 것을 실천이라 하고 실천의 다양한 형태를 실천론이라 한다.

실천

신심고백
6조신심

일체

무념

사회

역사

마법

사트.svg 자세한 내용은 음율마법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피페레 제국의 마법인 음율마법이 바로 이 시띵교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각주

  1. 시띵은 가장 먼저 세칙을 깨우친 위대한 스승일 뿐 그 자체가 절대자로서 군림하는 것은 아니다.
  2. 평평한 못 이라는 뜻으로, 한자로 하면 평택(平澤)이다.
  3. 제국사기는 피페레 제국의 역사서이다. 하지만 역사 그 자체를 전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제국의 역사에 종교적 의미까지 첨가한 주석을 넣은 책은 경으로 취급된다.
  4. 아도르카가 죽음을 맞이할때는 안식(安息)이라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