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도시중의 도시, 도시들의 임금
ολλρυμδεα νοπυμ ολλρυμ. ολλρυμδεατηρ μιϟυε.

로토시아 (피페레어:ροτοσια)는 피페레 제국의 수도이자 시띵교의 성지이다. 시띵교의 교종이자 피페레제국의 통치자로서 아도르카가 상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로토시아란 말의 뜻은 연꽃의 도시란 뜻이다.

지리적으로는 아트리아의 북부, 광활한 평원지대의 가운데에 있는 곳이고, 행정적으로는 로토시아 주의 주도이다. 피페레 제국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며, 상업과 농업의 중심이 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세계에서도 큰 강이며, 아트리아에서 가장 길고 큰 강인 시트레나 강이 도시를 관통하며, 마시마카시온 지역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도시 치고는 인구밀도가 낮은 도시이다.

역사적으로는 오랜시간동안 중요한 위치였으며, 수도의 역할을 해왔다. 혼란시대에선 한때 가장 강대했었던 도시국가인 마시모멜리아 의 도읍이었고, 수도가 아니었더라도 이곳에서 모시는 풍요와 사랑, 비의 신으로 여겨졌던 에오스 를 모시는 사당이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도시가 파괴당할때도 에오스 신전은 어떠한 경우에도 공격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고대의 사람들에게 에오스는 "구름을 옥좌삼고 천공을 지붕삼아 태양처럼 빛나는"(에오스의 서 중) 신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에오스는 가장 초기부터 섬겨졌었고, 이후에도 가장 높거나, 아니면 중요한 위치를 가져왔기 때문에 도시와 신의 위치가 동일시되던 시대엔 그만큼 중요한 도시, 고귀한 도시로 인정되어왔다.

이 도시의 이름이 로토시아가 된 이유는 시 시띵이 이 도시에 피어났던 연꽃을 아름답다 하였고, 이 도시의 습지엔 연꽃이 아주 많았기 때문에 연꽃의 도시라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시띵교에서 연꽃은 시띵과 깨닳음을 상징하는, 시띵교를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다.

이후 에오스 신전의 내부 프레스코화는 회반죽으로 가려졌고, 그 위에 시띵의 일생을 그린 그림이 들어섰고 이후 에오스 신전은 시띵을 모시는 사당으로, 이후 성좌의 알현실로 쓰이게 되었다.

역사

로토시아의 역사는 혼란시대에선 두 시기로, 문명시대에선 설립부터 지금의 시기로서 하나의 시기로 이해하고 있다.

혼란시대의 마시마카시온

많은 기회를 주지만, 그만큼 위험한것은 도시이다.

이 이야기는 니케르 문화 이후 시트레나 강이 문명의 주역이 된 이후를 다룬다. 니케르 문화 시대엔 마시마카시온은 그 누구도 살지 않았다.

혼란시대에서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서 보는 로토시아는 마시마카시온에 자리잡았던 많은 도시들을 모태로 본다. 마시마카시온에서 가장 처음 탄생한것은 밭이었고, 그만큼 오래된것은 종교적 제단이었다.

피니투라 다신교의 성지로도 여겨졌던 이곳은 사랑과 풍요의 신 에오스의 거처가 되은 신전이 있었다. 농사만큼이나 종교도 오랜 역사로서, 농사의 흥망에 있어서 신적 존재의 필요가 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시마카시온은 다른곳보다도 습한 지리였기에, 농사가 유리하였고 오래전부터 농사가 이루어졌다.

이 도시에서 처음 탄생한 도시는 에오스를 수호신이자 주신으로 삼고 탄생한 마시모이다. 마시모는 이후 마시마카시온이란 말의 어원이 되기도 한다. 마시모는 초기에 탄생한 도시였고, 농업과 상업이 주된 도시였으나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들 가운데에선 너무나 작은 도시였다.

주변에 더 번화한 도시인 북부의 프리디아, 시온, 엔다퀴와 같은 도시들이 더욱 번성했으며, 프리디아와 엔다퀴는 패권을 다툴 정도였다. 초기에 승리한 도시는 프리디아였고, 프리디아는 마시모를 보호명목으로 삼으며 에오스를 자신의 주신인 프록시우스의 아내로 삼았다.[1]

전쟁과 승리의 신이었던 프록시우스의 아내로 편입된 마시모의 에오스는 프리디아의 영향력 아래에 있을때는 평화로웠다. 하지만 프리디아의 시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프리디아는 레조넌스인들과의 교역에서 분쟁을 겪었고 이후 전쟁에서 밀려 시트레나강 중부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마시모는 홀로 놓이게 되었다.

이때, 주변에 매우 이질적인 도시가 있었는데, 레조넌스인들이 지도계층으로서 비의 신이자 날씨를 돕는 신으로 여겼던 천공의 신 탄티아 를 모시는 도시인 멜리아가 있었다. 하지만 이 멜리아는 레조넌스인들이 지도계층이었으나 도시공화정 체제의 도시였고 피니투라인들과 레조넌스인들이 함께 사는 도시였는데, 이 레조넌스인들은 피니투라인들과의 혼혈로 레조넌스에서 추방된 이들이었다.

이러한 특수한 도시는 다른 도시들에게 배척당하고 있었고, 에오스의 다른 신격으로서 탄티아를 편입하는것으로, 마시모와 멜리아는 도시연합을 결성하였다. 신격이 편입된 이유로는 두 신이 여성으로 여겨졌고, 에오스의 명성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결국 마시모와 멜리아는 합쳐져 마시모멜리아라 불리게 되었고, 크기로 보면 당대 도시들중에서도 큰편에 속하게 되었다. 이때 에오스 신전은 천공의 신으로서 구름을 옥좌삼아 하늘을 천장삼고 태양처럼 빛나서, 비와 풍요를 주시는 우리에게 관심 많으신 여신 (신의 서 중) 이라는 찬양을 받으며 풍요와 사랑(관심으로서)의 신으로서 아래엔 네모난 모양의 신전을, 천공의 신으로서 둥근 모양의 천장을 지어 그 격을 높이고 신의 격만큼이나 도시의 격을 높였다.

물론 도시들 가운데 절대강자는 아니었으나, 이제 변수중 하나로서 통하는 도시가 된것이다. 이후 강 유역의 중부를 지배함으로서 피니투라와 레조넌스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다가, 이후 힘을 축적하며 혼란시대 중기엔 꽤 긴 시간동안 지배자로서의 도시 모습을 보였고, 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갈 시기, 도시는 한번 큰 변화를 겪었다. 이유는 모르나 당시 물을 관리하던 관계시설이 붕괴하여 구도심이 잠기는 일이 있었다. 이에 마시마카시온의 지도자들은 땅을 메우고 앞으로 도시의 방어와 생존을 위해 성을 짓기로 했는데, 천문학적인 별의 모양대로 지어서, 도시 전체를 일종의 성스러운 신전으로 만드려 하였다. 이때 도시의 중심에는 기하학적인 도형이 배치된 별 모양의 요새가 세워졌고, 중심에 구 신전을 낮은 지대로 두고, 그 위에 여러개의 기둥과 아치형 구조로 새로운 공간을 공중에 띄워선 공중에 뜬 화려한 신전을 지었다. 이러한 고중대 시트레나 강의 모든 자본과 기술이 접목된 마시모멜리아의성형요새는는 자연에 대한 승리의 준거로 삼고, 중기에 전성기를 맞으며 중기의 주요도시로서 기능하였다.

이후 후기에 접어들자 급격히 몰락하였는데, 그 이유는 기온이 떨어져 농사에 피해가 있었고, 북부의 페투치아의 등장으로 정치지형의 변화, 식민도시였던 도시 마리오와 켈리온이 마리오는 전쟁에서 패배해 멸망당했고, 켈리온은 주도권을 빼았기며 몰락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모두를 어렵게 만든 인간들의 욕심이 만든 전쟁인 마리오 전쟁에서 로토시아는 몰락했다. 비록 요새는 무너지지 않았으나, 요새 주변의 도심이 불타며 몰락했다.

시띵이 등장한 시기엔 이미 마시모멜리아에서 멜리아 지역 일부는 몰락해 폐허가 된 이후였기 때문이다. 이후 농업중심의 도시로서 계속하여 연명하고 있었다.

문화도시로서 마시모멜리아는 다소 향락주의적 도시의 경향이 강했다. 이를 보고 페투치아의 밀레니얼에서 이들을 지칭하며 "가장 높은 신의 명성만큼이나, 신발을 끌며 허리춤을 파는[2] 이들이 많다." 가장 번성한 시기에는 신전의 신관도 행위적인 예식으로서 돈을 받고 성행위를 하는것이 제사로 통하기도 할 정도였고, 매우 방탕한 도시라는 면모 또한 강했다.

뿐만 아니라 경제의 중심으로서 기능했던만큼 사치품도 많았지만 사기와 고리대금으로 몰락하는 이들도 많았고,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매춘으로 내몰리는 사람도, 노예가 되는 사람도 많았다. 더불어, 당시엔 지금에 비해 훨씬 높은 인구밀도로 범죄와 역병의 위험 또한 컷기 때문에 많은 기회만큼 위험한것이 도시라고 인식되었다.

문명시대의 마기마카시온

이리 오너라, 도시는 너희를 먹이려고 있다.

  1. 에오스는 원래 성별이 명확하지 않았으나 모계사회가 정착한 이후 여성으로 이해되었다.
  2. 신발은 당시 매춘을 하던 이들이 신발에 자신을 따르라는 뜻의 글을 새긴채로 돌아다니며 발자국을 남겼고, 허리춤은 직역하자면 허리끈인데, 매춘을 한다는 은유적 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