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차 북메디아 전쟁[3]
Tuxy xuny nute Medja Fjunrijn
[[파일:]]
날짜
5223년~5231년
장소
자텐다 황금전단 자텐다 황금전단사흐러이스탄 부족연맹 사흐러이스탄 부족연맹 전역
원인
제 1차 북메디아 전쟁에서 쇠예흐 대제국이 차지한 영토의 탈환
교전국
쇠예흐 대제국 쇠예흐 대제국 산트 파벌 군사 자텐다 측
자텐다 해방연맹 자텐다 해방연맹

사흐러이스탄 측
사흐러이스탄 부족연맹 사흐러이스탄 부족연맹
지원 세력
상세 정보
[ 펼치기 · 접기 ]
지휘관 쇠예흐 대제국 [[]] {{{제2_세력_지휘관}}}
병력 쇠예흐 대제국 201만명 자텐다 황금전단 257만명
사흐러이스탄 부족연맹 8만명
피해 규모 쇠예흐 대제국 262만명 자텐다 해방연맹 자텐다 해방연맹 202만명
사흐러이스탄 부족연맹 4만명
민간인
사상자
602만 명 희생 총 3,000명 희생[4]
결과
쇠예흐 대제국 쇠예흐 대제국의 항복 및 자텐다 해방연맹 자텐다 해방연맹 고토 수복과 사흐러이스탄 부족연맹 사흐러이스탄 부족연맹의 대부분 재건
영향
쇠예흐 대제국 쇠예흐 대제국의 멸망, ? 가베 연방의 재건
언어 명칭+
쇠예흐 대제국 가베어 Tuxy nute Medja Fjunrijn
AR 그룹 자텐다어 Fózekráyeslay[5]
대한민국 한국어 제 2차 북메디아 전쟁
영국 영어 Second North Media War
안드로 안드로어 wp 2ck qnrapeldk wjswod
메다 메다어 lc 2of ;bxicudjf ltslra

개요

5223년 이후, 제 1차 북메디아 전쟁에서 쇠예흐 대제국이 차지한 영토를 복원하기 위해, 자텐다 해방연맹 자텐다 해방연맹이 쇠예흐 대제국에 선전포고하며 시작하였다.

전쟁 배경

5222년 4월 4일 쇠예흐 대제국의 군주인 다비크 메르니가 사망하고 군주를 내려놓았다. 아직 후계를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제국이 혼란해졌다.

다비크 메르니의 죽음 이후, 왕위는 산트 파벌, 메르니파벌, 보수파벌로 갈라져, 제국을 이어나가려 했으나, 5223년 자텐다 해방연맹 자텐다 해방연맹의 선전포고를 막지 못한다.

경과

5223년 7월 20일- 자텐다 해방연맹 자텐다 해방연맹의 복원 작전이 시행되었고, 서녀슈트러코네바시 남부의 섬과 반도를 점령하였다.
5223년 8월 10일- 자텐다 해방연맹 자텐다 해방연맹이 옛 자텐다 황금전단의 러요치 부분을 점령했다.
5223년 - 자텐다에게 러요치와 셔녀슈트러코네바시를 탈환했다.
5224년 - 자텐다가 세요짐 평원에 도달한다.
5225년 - 산트파벌의 주도로[6] 니커시체하르자를 방어하는데 성공했다.
5227년 - 사흐러이스탄이 코야야르크를 탈환하였다.
5230년 - 산트의 전선이 무너지고 같은 해, 오닉서커트를 점령한다.
5231년 - 쇠예흐 대제국이 항복하고 전쟁이 끝이난다.
5234년 - 자텐다 황금전단이 본래 영토를 회복하고, 더 나아가 구 가린다리 서북부의 솔트머스를 점령한다.[7]
5235년 - 사흐러이스탄 부족연맹이 본래 영토를 회복한다.

결과

영향

쇠예흐 측

쇠예흐 대제국 쇠예흐 대제국

초반 군사 대응에 실패하고 자텐다의 군사를 막지 못한다.

패전의 영향으로 국가의 멸망까지 이어진다.

가베 연방이 건국되고, 전쟁을 주도한 산트파벌은 요드르로 추방된다.

가베 제국 가베 제국

반-쇠예흐 측

사흐러이스탄 부족연맹 사흐러이스탄 부족연맹

칼르신 공화국 칼르신 공화국

자텐다 해방연맹 자텐다 해방연맹

자텐다쇠예흐 대제국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쇠예흐의 통치기간동안 수없이 많은 인명손실을 겪었다. 전쟁 이전 2,978만명에 달하던 자텐다의 전통적 7권역[8]의 인구는 1,622만명까지 줄어들었으며, 자텐다의 도시 및 인프라가 상당수 파괴되었다. 자텐다인들은 쇠예흐 대제국 치하에서 많은 수가 살해당했으며, 자텐다 해방연맹과 이를 계승한 AR 그룹은 전후 인구복구를 위해 창궁의 호수[9]을 가동하게 된다.

해방 이후 세워진 AR 그룹의 인구는 5720년 기준 약 3,332만명에 달하였는데 이것은 자텐다 황금전단 북쪽에 있던 카둔 국가들의 통합으로 인한 카둔 제민족들의 유입[10]과 해외에 나가있던 자텐다인들의 귀환 및 전후 혼란으로 인한 국외 자텐다인 상단의 철수로 인한 인구 변동으로 확인된다.

쇠예흐 대제국 시기 수많은 자텐다의 문화와 예법이 사라졌으며, 쇠예흐 대제국의 이종교 탄압으로 인해 사데나와 관련된 고대 예법과 마법이 소실되게 된다.

자텐다가베를 연결하던 전통적인 카르파슈너이 자텐다너시케이하지 자텐다라는 자텐다계 종족-상단 그룹은 사라졌으며, 북메디아 서부의 무역망이 경색되었다. 자텐다 해방연맹은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부서진 본국의 무역과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전 세계에 퍼진 자텐다계 금융을 끌어모으기 시작한다. 덕분에 자텐다 해방연맹은 전쟁의 참화를 상당수 복구할 수 있었다.

전쟁을 통해 카둔 제종족의 연합체-부족국가이던 신앙의 결행자, 에세르데소니, 연해 솔니 혈족, 중부 아이르테피 혈족이 자텐다 문명에 본격적으로 편입되었고[11], 자텐다는 전후 인력부족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상 프레니처로지냐드 요새 또한 이 시기에 자텐다 문명으로 흡수된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카둔 제종족들에게도 미쳤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어스몬 신앙을 믿는 오이투포 산맥의 카둔 커뮤니티였다. 이들은 자텐다로부터 카둔 종족의 독자성을 지켜내는 데 큰 기여를 했는데, 한때 인구가 50만명에 달하던 오이투포 산맥어스몬 신앙 커뮤니티는 쇠예흐 대제국의 이종교 탄압과 함께 소멸되었다. 이후 카둔 제종족들은 어스몬 신앙 커뮤니티라는 방어막을 잃고 자텐다 문명에 종속되게 된다.

자텐다 해방연맹이 자텐다를 탈환하기 위한 전쟁을 위해 쇠예흐 대제국 점령지에 퍼트려 놓은 기업계 반란군들은 지역 배경에 따라 다른 체계를 구축해놓았다. 제 2차 북메디아 전쟁 동안 이러한 기업계 반란 군들은 현지와의 강도높은 유착을 통해 쇠예흐 대제국에 대한 저항운동을 쉽게 만들어주었으나, 전후 지역간의 갈등원인이 되어버린다. 결국 자텐다 해방연맹 내부 세력간 무력분쟁인 분열의 밤 사건이 일어났으며, 자텐다의 단일 국가인 자텐다 황금전단을 재건하기 무리라고 판단한 해방연맹 주역들은 황혼 무역협정을 체결하여 AR 그룹이라고 불리는 기업국가연합을 결성하게 된다.

이외 국가 및 지역

기타

메타

도보게

쇠예흐 대제국 북탄디아 전쟁 북메디아 전쟁

각주

  1. 2024년 12월 25일 20시 34분 57초 기준. 미디어위키 표현식의 한계에 의해서 이 값은 정확하게 나타나기 힘들다. 정확한 값을 얻기 위해서는 사트/표준#Python 구현에서 설명하는 방법을 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디스코드 서버에는 차단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습니다.
  3. 제 1차 북메디아 전쟁과 묶어 가베-자텐다-사흐러이스탄전쟁이라고도 부른다.
  4. 자텐다 황금전단사흐러이스탄 부족연맹의 영토를 쇠예흐 대제국의 영토로 통계했다.
  5. 해방 전쟁
  6. 정규군이 분혈해서 산트의 사군으로 파병되었다.
  7. 이 지역은 이후 세요그메레첸이라는 이름으로 AR 베센의 지역이 된다.
  8. 베센, 나지에셔트, 커너트페슈크바이, 브레슈-펜누카바허티, 세요짐, 일몰제도, 프레니처
  9. 자텐다 황금전단 초기 시절, 멸망을 대비해 제작한 거대 호수. 자텐다인은 수생 정령으로 호수를 통해 인구를 늘린다. 그러나 유의미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천년 단위의 마력 축적이 필요하다.
  10. 대부분은 이 경우에 해당된다.
  11. 이것으로 인해 인구가 2,476만명까지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