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그래 공화국/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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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5년 2월 3일, 지정국은 그래그래를 정복 후 라블 3세는 리지트파를 끌어내리고 본인이 황제가 되어 국호를 [[일산제국]]으로 변경했다. 그 후, 그래족의 반발을 억누르기 위하여 이아스 정부를 재출범 시켰다. 그러나 명목상의 전교회장이었고 실제로는 내정에 관여할 수 없었다.
3535년 2월 3일, 지정국은 그래그래를 정복 후 라블 3세는 리지트파를 끌어내리고 본인이 황제가 되어 국호를 [[일산제국]]으로 변경했다. 그 후, 그래족의 반발을 억누르기 위하여 이아스 정부를 재출범 시켰다. 그러나 명목상의 전교회장이었고 실제로는 내정에 관여할 수 없었다.
===민족 말살 정책===
===민족 말살 정책===
일산제국의 최종적인 목표는 그래족을 일산족과 통합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먼저 일산제국의 사상 교육을 시키고 일산제국을 따르면 그에 맞는 상금을 주어 친일산파<ref>일산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산제국을 지지하는 자들을 일컫는다.</ref>를 양산했다. 그런 다음, 그래그래의 독립 운동가들을 대부분 나라에서 추방시키거나 사형시켰다.
일산제국의 최종적인 목표는 그래족을 일산족에 편입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먼저 일산제국의 사상 교육을 시키고 일산제국을 따르면 그에 맞는 상금을 주어 친일산파<ref>일산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산제국을 지지하는 자들을 일컫는다.</ref>를 양산했다. 그런 다음, 그래그래의 독립 운동가들을 대부분 나라에서 추방시키거나 사형시켰다.
===임시 정부 수립===
===임시 정부 수립===
3540년, 추방당하지 않았던 독립 운동가 라피테쿠스 15세, 디야 등이 당시 유일하게 남아있던 학생부였던 라지르<ref>유일하게 다른 나라로 가지 않았던 학생부였다.</ref>와 이아스를 중심으로 그래그래 임시 정부를 수립하였다.<ref>3540년, 임시 정부 수립</ref> 당시에 보이는 곳에 설치한다면 일산제국에 의해 소탕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지하, 산림 등 찾기 어려운 곳에 다양한 임시 정부 건물을 세운 후 일산제국이 발견하지 못한 건물들을 사용하였다. 임시 정부는 그래그래의 독립을 위하여 해외에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이미 일산제국이 먼저 대량의 자본을 주는 대신 내정에 간섭하지 말아달라며 외국과의 협약을 마쳤었다.
3540년, 추방당하지 않았던 독립 운동가 라피테쿠스 15세, 디야 등이 당시 유일하게 남아있던 학생부였던 라지르<ref>유일하게 다른 나라로 가지 않았던 학생부였다.</ref>와 이아스를 중심으로 그래그래 임시 정부를 수립하였다.<ref>3540년, 임시 정부 수립</ref> 당시에 보이는 곳에 설치한다면 일산제국에 의해 소탕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지하, 산림 등 찾기 어려운 곳에 다양한 임시 정부 건물을 세운 후 일산제국이 발견하지 못한 건물들을 사용하였다. 임시 정부는 그래그래의 독립을 위하여 해외에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이미 일산제국이 먼저 대량의 자본을 주는 대신 내정에 간섭하지 말아달라며 외국과의 협약을 마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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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기==
==혼란기==
36세기~39세기
36세기~39세기
===친일산파 청산===
3582년, 광복 직후 전교회장이 된 킨마는 전쟁으로 일어난 피해들을 복구해야했다. 그리하여 복구하는 자금을 모으기 위해 친일산파들의 재산을 모조리 몰수한 뒤 국가에서 추방시켰다. 그 후 몰수한 재산으로 전쟁 피해를 복구하였다.
===국력 강화===
3584년, 킨마 정부는 일산제국의 간섭을 막고자 국방력을 강화하고 일산제국으로부터 배상금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산제국은 그래그래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고 계속하여 내정에 간섭하려 하였다. 그러자 킨마 정부는 일산족 관리들을 모두 해고하고 독립 운동가를 관리로 등용하였다. 또한 일산제국과의 모든 수교를 거부하였다.
===일산제국 쿠데타===
3790년대, 일산제국 내에서는 황제인 라블 가문과 예전에는 리지트파였던 파지리 가문이 서로 대치 상태에 있었다. 그러던 중, 3798년 파지리 가문은 군권을 장악하여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 후 3802년 파지리 가문이 승리하며 파지리 트리트파가 황제로 즉위하였다.
===7.26 부정 선거===
3829년 7월 26일, 전교회장 선거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당시 그래당과 일산당<ref>킨마의 정책 이후 일산당이 거의 해산되기 직전이었으나 39세기가 오면서 다시 그래당과 비슷한 힘을 얻었다.</ref>  후보의 득표차가 5% 차이로 일산당 후보가 승리하였지만, 투표율이 170%였다.<ref>3829년, 7.26 부정 선거</ref> 그래그래 내에서는 일산당내 비리를 조사하였지만 부정표에 관련된 것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그래당 후보였던 포쿠가 일산제국의 음모가 분명하다며 일산제국을 향해 조사를 요청하였으나 일산제국은 이를 거부하였다. 그렇게 누구의 소행인지 밝혀지지 못하는 듯 했으나 일산제국 황제인 트리트파가 부정 선거를 명령한 자료가 발견되면서 일산제국이 범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트리트파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일산제국을 모함한다는 명목으로 3830년, 그래그래를 침공했다.<ref>3830년, 그일전쟁</ref>
===그일전쟁===
갑작스러운 침공으로 그래그래는 영토의 70%가 일주일 만에 함락되었다. 그러나 부정 선거가 인정되어 전교회장이 되었던 포쿠는 군대를 정비하여 최종 방어선을 확보했다. 그리고 당시 일산당 또한 이러한 침공은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하여 그래그래를 도와 참전하였다. 그렇게 일산제국과 그래그래 공화국의 전쟁은 단숨에 전세가 역전되었고, 3831년 3월 1일 트리트파를 그래군이 사살하면서 전쟁은 승리하였다. 그러나 포쿠 정부는 이대로는 또다시 그래그래와 일산제국의 갈등이 심해져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 판단하여 전쟁을 멈추지 않고 계속 진격하여 일산제국과 그래그래를 통일하였다.<ref>3831년, 그래그래 통일</ref>
====통일에 대한 평가====
그래그래 공화국의 갑작스러운 통일로 인해 이 통일에 대해서는 다양한 역사적 평가들이 있다. 첫 번째는 두 민족이 드디어 하나로 합쳐지는 완전한 통일이었다는 평가이다. 계속된 전쟁으로 서로 피해만 입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통일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두 번째는 두 민족이 통일되긴 하였으나 전쟁을 통한 불완전한 통일이었다는 입장이다. 아직 통일하기에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이렇게 통일했다가는 또다시 분열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여러 평가가 존재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현재의 그래그래 공화국 영토가 확립되었으며 대규모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줄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2022년 6월 28일 (화) 21:3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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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그래 공화국/역사 · 그래그래 공화국/정치 · 그래그래 공화국/문화 · 그래그래 공화국/기술

그래그래 공화국의 역사이다.

건국 이전

17세기~31세기

지정국 건국

1665년 건국된 그래그래 건국 이전부터 존재하던 절대왕정 국가이다. 민족은 현재 그래그래 공화국하고 같이 일산족과 그래족이 있었지만, 일산족만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당시 리지트파[3]는 지정국의 민족 중 일산족[4]만을 우대하고 그래족을 탄압하며 나라를 운영하였다.

일천고 혁명

3087년 12월 9일, 대부분의 그래족이 다녔던 일천고등학교에서 리지트파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처음에는 지정국 왕실은 그들의 시위가 금방 잠잠해질 것이라 생각하고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천고 시위는 학교 단위에서 점차 커지면서 그래족 전체의 시위로 확대되었다. 그렇게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지정국 왕실은 시위를 멈출 수 없어 그래족을 시위가 일어난 지역인 염방[5]에 보낸 뒤, 그 지역을 다른 지정국 영토와 접촉할 수 없게 폐쇄하였다. 결국 그래족은 염방 안에서 살아남는 방법밖에 없었고 3088년 5월 5일, 그래족의 나라인 그래그래 공화국을 선포한다.[6]

분단기

31세기~36세기

체제 정비

그래그래는 지정국의 왕정 체제에 분노하여 만들어진 국가였기에 공화정을 택하여 투표로 행정 수반을 뽑았다. 그리고 일천고 혁명을 계승하여 행정 수반을 전교회장으로 칭하고 이를 감시하는 학생부를 만들었다. 초대 전교회장인 라피테쿠스 1세[7]는 그래그래의 기틀을 다지고 간단한 법들을 만들었다.

일산족 대이동

3448년, 지정국은 점점 쇠퇴하고 있었다. 결국 리지트파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고 있었고, 그러던 중 등장한 것이 바로 라블 1세[8]이다. 라블 1세는 리지트파에게 지정국의 위기를 타개할 계책으로 다수의 일산족을 그래그래로 이주시키자고 주장하였다. 리지트파는 지정국을 포기하는 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하였지만, 라블 1세의 설득으로 계획을 실행하였다. 그렇게 다수의 일산족이 그래그래로 이주하였다.[9]

일산족 대이동의 영향

일산족 대부분을 그래그래로 이주시킨 결과, 그래그래 내에서 일산족과 그래족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그리하여 그래족은 그래당, 일산족은 일산당을 만들며 양당제의 성격이 강화되었다. 그러나 일산족의 수가 점차 많아졌고 그래그래가 곧 다시 지정국에 편입될 수도 있다는 설이 돌면서 일산당 지지자들의 수가 월등히 많아졌다. 결국 일산당이 집권을 하게 되면서 또다시 지정국이 그래그래보다 다시 우세해졌다.

간선제 도입

3531년, 일산당이 집권하던 중 당시 전교회장이던 라블 3세[10]는 라블 1세의 소망이었던 간선제를 이뤄내기 위하여 간선제를 도입하였다. [11] 간선제 도입 이후 일산당의 권력이 더욱 강해질 것 같았지만 그래당 또한 이 사건 이후 단합하여 일산당의 집권을 끝내기로 하였다. 그때 등장한 자가 바로 이아스이다. 이아스는 일산당의 집권을 끝내기 위해 모든 그래족을 단합시켰고 간선제에서 선출되어 집권하게 된다. 그리고 3534년 12월 31일, 간선제는 도입하였던 라블 3세가 승복하며 폐지하게 된다.

헌법 제정

3535년 1월 1일, 이아스 정부는 그래그래에 제대로 된 법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이라며 그래그래 최초로 근대 헌법인 그래그래 헌법을 제정한다.[12] 그러나 헌법에 의거해 선출된 입법부는 대부분이 일산당, 혹은 이아스 정부에 반대하는 그래당 의원[13]만이 존재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바로 전교회장 탄핵 소추를 진행하였고 게속된 정당 내 갈등으로 이아스 정부는 단 2주 뒤인 3535년 1월 15일, 헌법을 폐지하며 스스로 하야하였다.

지정국 불법 점거

3535년 1월 16일, 전교회장이 하야하고 그래당이 분열되고 그래그래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 지정국으로 이주해있던 라블 3세는 리지트파와 함께 무장하여 그래그래에 들어왔다. 그래그래의 거센 저항을 예상했지만 대부분의 그래족들이 분열되어 있었고 전교회장과 함께 대부분의 학생부도 없어[14] 단 하루만에 일산당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그래그래의 국권을 빼앗았다.[15] 그 후 해외에서의 출입을 금지시켜 학생부의 출입을 막고 그래그래를 지정국의 식민지로 만들어 국권 침탈기인 일산 강점기가 시작되었다.

일산 강점기

36세기

이아스 정부 재출범

3535년 2월 3일, 지정국은 그래그래를 정복 후 라블 3세는 리지트파를 끌어내리고 본인이 황제가 되어 국호를 일산제국으로 변경했다. 그 후, 그래족의 반발을 억누르기 위하여 이아스 정부를 재출범 시켰다. 그러나 명목상의 전교회장이었고 실제로는 내정에 관여할 수 없었다.

민족 말살 정책

일산제국의 최종적인 목표는 그래족을 일산족에 편입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먼저 일산제국의 사상 교육을 시키고 일산제국을 따르면 그에 맞는 상금을 주어 친일산파[16]를 양산했다. 그런 다음, 그래그래의 독립 운동가들을 대부분 나라에서 추방시키거나 사형시켰다.

임시 정부 수립

3540년, 추방당하지 않았던 독립 운동가 라피테쿠스 15세, 디야 등이 당시 유일하게 남아있던 학생부였던 라지르[17]와 이아스를 중심으로 그래그래 임시 정부를 수립하였다.[18] 당시에 보이는 곳에 설치한다면 일산제국에 의해 소탕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지하, 산림 등 찾기 어려운 곳에 다양한 임시 정부 건물을 세운 후 일산제국이 발견하지 못한 건물들을 사용하였다. 임시 정부는 그래그래의 독립을 위하여 해외에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이미 일산제국이 먼저 대량의 자본을 주는 대신 내정에 간섭하지 말아달라며 외국과의 협약을 마쳤었다.

학생부 피격 사건

3560년대, 점점 독립의 가망이 없어 보였고 친일산파의 수가 늘어나면서 임시 정부 내에서 배신자의 수가 급증하였다. 그리고 친일산파 문제에 대하여 임시 정부의 지도자였던 라지르와 이아스가 서로 대립하였다. 라지르는 독립할 가망이 없기에 친일산파가 늘어난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였지만 이아스는 친일산파를 옹호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하며 둘의 사이가 멀어졌다. 그리고 3571년, 일산제국의 간부인 라케는 이 두 명이 있던 임시 정부를 찾아내 급습하였고 라지르는 본인의 총을 이아스에게 던진 뒤, 라케를 못 움직이게 하여 총을 쏘라 하였으나 이아스는 그 총으로 라지르를 저격하였다.[19] 사실 라케에게 임시 정부의 위치를 알려준 것이 이아스였으며 3560년대부터 이미 친일산파였던 것이다.

독립군 창설

3575년, 라피테쿠스 15세는 해외로 나가 돌아오지 못하던 학생부를 발견했다. 그 후, 학생부와 함께 해외에서 몰래 군대를 모아 독립군을 창설하였다.[20] 그 다음 이들을 데리고 일산제국으로 가는 것이 문제였는데, 당시 외교를 위하여 일산제국은 외국인들의 입국을 조금씩 허용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라피테쿠스 15세는 모든 독립군의 신분을 속여 조금씩 일산제국에 입국시켰고 5년에 걸쳐 모든 독립군을 그래그래 영토인 염방에 집결시키는데 성공했다.

독립 전쟁

3581년 11월 7일, 독립군은 염방 한가운데서 독립 선언문을 발표하며 일산군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가망이 없어 보였으나, 독립군은 염방만을 거점으로 끝까지 싸웠고, 결사 항전을 외치며 사기가 오른 독립군은 염방을 탈환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3582년 7월 6일, 모든 일산군이 염방에서 철수하면서 그래그래 공화국은 광복을 맞이하였다.[21]

혼란기

36세기~39세기

친일산파 청산

3582년, 광복 직후 전교회장이 된 킨마는 전쟁으로 일어난 피해들을 복구해야했다. 그리하여 복구하는 자금을 모으기 위해 친일산파들의 재산을 모조리 몰수한 뒤 국가에서 추방시켰다. 그 후 몰수한 재산으로 전쟁 피해를 복구하였다.

국력 강화

3584년, 킨마 정부는 일산제국의 간섭을 막고자 국방력을 강화하고 일산제국으로부터 배상금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산제국은 그래그래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고 계속하여 내정에 간섭하려 하였다. 그러자 킨마 정부는 일산족 관리들을 모두 해고하고 독립 운동가를 관리로 등용하였다. 또한 일산제국과의 모든 수교를 거부하였다.

일산제국 쿠데타

3790년대, 일산제국 내에서는 황제인 라블 가문과 예전에는 리지트파였던 파지리 가문이 서로 대치 상태에 있었다. 그러던 중, 3798년 파지리 가문은 군권을 장악하여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 후 3802년 파지리 가문이 승리하며 파지리 트리트파가 황제로 즉위하였다.

7.26 부정 선거

3829년 7월 26일, 전교회장 선거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당시 그래당과 일산당[22] 후보의 득표차가 5% 차이로 일산당 후보가 승리하였지만, 투표율이 170%였다.[23] 그래그래 내에서는 일산당내 비리를 조사하였지만 부정표에 관련된 것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그래당 후보였던 포쿠가 일산제국의 음모가 분명하다며 일산제국을 향해 조사를 요청하였으나 일산제국은 이를 거부하였다. 그렇게 누구의 소행인지 밝혀지지 못하는 듯 했으나 일산제국 황제인 트리트파가 부정 선거를 명령한 자료가 발견되면서 일산제국이 범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트리트파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일산제국을 모함한다는 명목으로 3830년, 그래그래를 침공했다.[24]

그일전쟁

갑작스러운 침공으로 그래그래는 영토의 70%가 일주일 만에 함락되었다. 그러나 부정 선거가 인정되어 전교회장이 되었던 포쿠는 군대를 정비하여 최종 방어선을 확보했다. 그리고 당시 일산당 또한 이러한 침공은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하여 그래그래를 도와 참전하였다. 그렇게 일산제국과 그래그래 공화국의 전쟁은 단숨에 전세가 역전되었고, 3831년 3월 1일 트리트파를 그래군이 사살하면서 전쟁은 승리하였다. 그러나 포쿠 정부는 이대로는 또다시 그래그래와 일산제국의 갈등이 심해져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 판단하여 전쟁을 멈추지 않고 계속 진격하여 일산제국과 그래그래를 통일하였다.[25]

통일에 대한 평가

그래그래 공화국의 갑작스러운 통일로 인해 이 통일에 대해서는 다양한 역사적 평가들이 있다. 첫 번째는 두 민족이 드디어 하나로 합쳐지는 완전한 통일이었다는 평가이다. 계속된 전쟁으로 서로 피해만 입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통일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두 번째는 두 민족이 통일되긴 하였으나 전쟁을 통한 불완전한 통일이었다는 입장이다. 아직 통일하기에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이렇게 통일했다가는 또다시 분열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여러 평가가 존재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현재의 그래그래 공화국 영토가 확립되었으며 대규모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줄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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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디스코드 서버에는 차단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습니다.
  3. 지정국의 왕호이다.
  4. 지정국의 지배층이어서 지정족이라고도 불린다.
  5. 일천고가 있던 지역, 훗날 그래그래 공화국의 수도가 된다.
  6. 3088년, 그래그래 공화국 건국
  7. 라피테쿠스 가문의 시초, 그래그래 공화국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가문이다.
  8. 라블 가문의 시초, 지정국의 실권을 가지고 있는 가문이다.
  9. 3488년, 일산족 대이동
  10. 일산족 대이동의 성과로 대부분 일산당에서는 라블 가문이 후보로 나왔다.
  11. 3531년, 간선제 도입
  12. 3535년, 헌법 제정
  13. 훗날 그래당과 분리된 염경당을 창당한다.
  14. 학생부는 당시 다른 나라로 가서 협약을 맺고 있었다.
  15. 3535년, 그래그래 국권 침탈
  16. 일산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산제국을 지지하는 자들을 일컫는다.
  17. 유일하게 다른 나라로 가지 않았던 학생부였다.
  18. 3540년, 임시 정부 수립
  19. 3571년, 학생부 피격 사건
  20. 3575년, 독립군 창설
  21. 3582년, 광복
  22. 킨마의 정책 이후 일산당이 거의 해산되기 직전이었으나 39세기가 오면서 다시 그래당과 비슷한 힘을 얻었다.
  23. 3829년, 7.26 부정 선거
  24. 3830년, 그일전쟁
  25. 3831년, 그래그래 통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