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정 전쟁 (파관 전쟁) 官-政 戰爭 (破官 戰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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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전쟁_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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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_그림_설명}}} | ||
날짜 | ||
5521년 2월 18일 ~ 5522년 1월 2일 | ||
장소 | ||
신세이 왕국 | ||
원인 | ||
대정탈환으로 인한 정규군의 위세 약화 | ||
교전국 | 신세이 왕국 | 신부관협회[3] |
신세이 왕국 | ||
지원 세력 | 민정협회 | 스이레이파 |
상세 정보 | ||
[ 펼치기 · 접기 ] |
지휘관 | 하야다테 아카하나노가쿠 | 하이나이 쇼토쿠[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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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12,700명 | 5,600명 |
피해 규모 | 893명 | [5] 1,002명 |
민간인 사상자 |
신오쿠보정 학살사건 시라카와정 무단재판사건 아사히카와 대화재 |
하토야마 민정협회 관민 학살사건 |
결과 | ||
정부군측의 승리 | ||
영향 | ||
아카하나노가쿠의 카이레이 개혁 완료, 문벌정치 개시 |
개요
5521년 2월 18일, 하야다테 아카하나노가쿠의 카이레이 개혁으로 큰 압박을 받던 관국들이 신부관협회를 창설한 후 사병을 축적하였고 대정탈환으로 약해져있던 정부군의 중추인 군정청을 대규모로 공격한 후 발발한 전쟁으로 각 지역에 산발적인 전투가 일어나 군인,민간인할 것 없이 큰 피해를 입혔다. 이후 신부관협회의 항복으로 신세이의 오랜 관국체제를 종말을 맞이하고 문벌정치가 시작된다.
배경
5515년 7월 1일,대정탈환이 시슈측의 패배로 끝나면서 관국들의 큰 지원군이었던 시슈를 잃은 관국들은 아카하나노가쿠의 카이레이 개혁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될 수 밖에 없었고 이에 위협을 느낀 몇몇 관국들이 신부관협회를 창설하였다. 이후 작은 규모의 관국부터 큰 규모의 관국까지 신부관협회에 가입했다. 신부관협회는 정부군에 대항해야 한다는 명목 하에 사병을 대규모로 증설하였고 이에 위협을 느낀 정부군도 군확을 하려하였으나 여러 재정적 요인에 가로막히며 신부관협회의 성장을 바라만 보게 된다.
1차 군정청 습격 계획
5521년 1월 20일, 신부관협회는 히가시케이부의 군정청을 공격하기 위해 주변 관국인 미야자와관과 획책해 군정청을 습격한 후 점거하려 했으나 당일은 군정청에 각 지방군이 모두 집결해 대회의를 개최하는 날이었기에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2차 군정청 습격
5521년 2월 18일, 신부관협회는 다시금 미야자와관과 연합해 군정청을 습격했고 신속히 점거해 군정청장 하츠야마 유키노를 신부관협회의 본거지인 야나기사무의 하치렌몬관에 압송되었고 이 사실이 정부에 전해지며 정부는 오랫동안 미뤄왔던 관국과의 전쟁을 선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