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 아르토이트
Kronikertum Arteutichesrheik+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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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토이트 왕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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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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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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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형태 | 바움베니치 연합왕국 남미세자리아 부족공화국 |
왕국 선포 | 4665년 2월 11일 |
이후 형태 | 아르토이트 제국 |
어문 | |
공용어 | 아르토이트어 |
단위 | |
기년법 | 자소크력 |
국가 코드 | |
한자약칭 | 亞(아) |
HerrWeiss |
개요
아르토이트 왕국(Kronikertum Arteutichesrheik)은 남메디아 동부에 위치한 국가이다.
영토는 기존의 바움베니치 연합왕국과 남미세자리아 부족공화국이 합쳐진 형태이다.
명칭
아르토이트 왕국의 다국어 명칭은 다음과 같다.
언어 | 명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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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토이트어 | Kronikertum Arteutichesrheik |
사삼오일 | 961022 5559, 961022 |
한국어 | 아르토이트 왕국, 아르토이트 |
안드로어 | dkfmxhdlxm dhkdrnr, dkfmxhdlxm |
메다어 | jfyg'vjd'g j/fakbx, jfyg'vjd'g |
국호
현재 아르토이트 제국을 지칭할 때 흔히 쓰는 "Arteutiches Rheik"는 이 시기부터 사용하게 된 국호이며, 이는 "아르토이트 국민국가"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는 아르토이트 제국을 칭할 때도 계속 사용한 이름이다. 아르토이트인이나 학자들은 두 시기를 구분하고자 할 때 아르토이트 왕국은 "Kronikertum Arteutichesrheik(크로니커툼 아르토이티셰스라히크)" 혹은 "Arteutiches Kronikerrheik(아르토이티셰스 크로니커라히크)"로 부르고, 아르토이트 제국은 "Kreizertum Arteutichesrheik(크라이저툼 아르토이티셰스라히크)" 혹은 "Arteutiches Kreizerrheik(아르토이티셰스 크라이저라히크)"로 부른다.
아르토이트 자체를 통칭할 때는 "Das Rheik"나 "Arteuterrheik"와 같은 명칭을 쓴다. 이것은 아르토이트인들이 자신들의 국가에 갖는 애국심을 보여주는 요소이다. 특히 Arteuterrheik라는 명칭은 '아르토이트'를 한 국가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정체성으로서 생각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아르토이트어에서 명사가 합성어가 될 때 -er가 붙어 곡용하는 것은 일반명사 중 인물명사만이 해당되는 문법이기 때문이다.
오직 아르토이트에만 Rheik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그 외의 국가에는 국가, 땅을 나타내는 단어인 'Land'를 이용한다.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아르토이트로서의 정체성의 근원인 부토니에를 지칭할 때이다. '아르토이트' 자체가 '새로운 부토니에'라는 의미이므로, 자신의 출신근원으로서의 부토니에를 향한 아르토이트인의 국민의식을 엿볼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주로 Teutiches Rheik라는 명칭을 쓴다.
- 아르토이트어의 문법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아르토이트어 문서를 참조하세요.
역사
바움베니치의 아이진-노이부르크 왕실은 현재의 바움베니치 연합구조가 혼란한 시대를 견뎌내기 위한 임시방편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바움베니치의 고위학자들을 모아 바움베니치가 지향해야 할 이상향을 그려내도록 하였다. 남메디아 동부는 역사적으로 고립된 장소였다. 자소크력으로 4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역사가 격동적으로 변하지 않아, 바움베니치의 학자들은 후보군은 내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첫 번째 후보는 바란 연방이었다. 남메디아 북동부의 명실상부한 패자였던 바란 연방은 그들에게 영감을 주기에는 충분했지만, 바움과 베니치는 본래 바란에 의해 차별받아 온 터라 당연하게도 왕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아이진-노이부르크 왕조의 혈통적 정통성 문제 또한 있었다. 바란의 후계를 자처하기에는 이미 두 라인드 왕국들이 멀쩡히 남아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바란을 국가 정체성으로 삼는다는 계획은 자연스럽게 폐기되었다.
학자들이 찾아낸 두 번째 후보는 토이트였다. 이는 바움베니치어로 기록된 명칭으로, 보다 잘 알려진 이름으로는 부토니에가 있다. 토이트는 바란 이전에 존재한 거대 국가였으며, 바움과 베니치 또한 이 시기에 주요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또한 베니치 대공의 혈통을 거슬러 가계도를 조사해보니, 오래 전에 부토니에 왕실의 공주가 베니치 대공과 혼인해 아이진 대공가에는 부토니에 왕실의 혈통이 옅게나마 흐른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혈통면에서도 작게나마 승계 명분이 있었으며, 바란 연방이 가졌던 패권 그 이상을 주장하기에도 부족함이 없고, 남메디아 북동부의 광대한 지역에 대한 역사적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진-노이부르크 왕실은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였다.
결국 바움베니치 연합왕국은 자국의 정체성이자 이상향을 “새로운 토이트(부토니에)”로 결정하였다. 바란의 일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일절 부정하면서, 남메디아에 바란 이상의 영향력을 투사하겠다는 야망이 담긴 결정이었다. 아이진-노이부르크 왕실은 국호를 새로 반포하기로 하는데, 이는 본래 부토니에를 뜻하는 ‘Teut’와 바움베니치어로 고유명사 앞에 붙어 ‘다시, 새로운’의 의미를 덧붙이는 접사 ‘ar-’를 붙인 “Arteut”였다. 그러나 왕실에서는 이것을 바로 선포하는 대신에,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
그러던 와중 자소크력 4665년, 바움베니치 연합왕국은 남미세자리아를 평화적으로 합병할 수 있었다. 구 바란 연방의 구성국 중 하나인 남미세자리아는 바란의 붕괴 이후 계속해서 미세자리아 연합에 의해 위협을 받는 상태였다. 남미세자리아는 “형제의 배신자들과 함께하느니 남쪽의 외지인들과 함께하겠다”며 자발적으로 바움베니치 연합왕국에 복속을 요청했다. 이는 바란 연방 시절, 바움베니치 근위사단이 미세자리아 최전선에 배치된 것에서 기인된 여파로 보인다. 나아가서 바움베니치가 바란의 일부로서의 정체성을 버릴 예정임을 밝히자, 남미세자리아의 부족장은 오히려 기뻐하며 ‘미세자리아인에 대한 그 어떠한 차별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건 하에 적극적인 합병 의사를 보였다.
아이젠-노이부르크 왕조는 남미세자리아 합병을 기점으로 “아르토이트 국민국가”를 천명했고, 이것이 공식 국호 “Arteutisches Rheik”이다. 이는 토이트계(바움-베니치인을 새로 부르는 명칭)과 미세자리아계 모두가 “새로운 토이트인(Arteutisch)”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아르토이트로서의 정체성을 선포한 이후, 아이진-노이부르크 왕조 주도 하에서 국가의 급격한 산업화가 시작됐다. 특히나 군수산업에 대한 왕실의 대대적인 투자가 이루어졌다. 이는 남쪽의 두 라인드 왕국들과의 무력충돌을 암시하는 것이었으며, 바움베니치 근위사단의 편제를 바탕으로 국군 체제도 개편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아르토이트만의 특별한 학문인 마법공학이 태동하기도 하였다. 상비군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개병제를 실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본래부터 군사전통이 유지되던 곳이라 자발적인 입대 희망자가 많았으며, 이는 성별, 그리고 토이트계-미세자리아계를 가리지 않았다. 이러한 사회적 움직임이 계속되어, 아르토이트 내에서는 출신성분과 성별로 차별하는 것은 상당히 무례하고 반사회적인 행동이라는 인식이 마련되었다.
- ↑ 2024년 12월 28일 04시 25분 30초 기준. 미디어위키 표현식의 한계에 의해서 이 값은 정확하게 나타나기 힘들다. 정확한 값을 얻기 위해서는 사트/표준#Python 구현에서 설명하는 방법을 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 디스코드 서버에는 차단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