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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라스타 왕권 투쟁 ==
== 에스라스타 왕권 투쟁 ==
[[페이시아 헤세테아]]는 생전 2명의 아들을 뒀었는데 이 중 장남이었던 [[페이시아 하르세노]]는 생후 23년만에 유전병으로 사망했다. 이런 상황 속 차남이던 [[페이시아 하르페시]]도 이른 나이에 소아암으로 사망한다. 이후 후사를 두지 않았던 헤세테아는 5771년 서거하며 4년 간 에스라스타 왕위가 공석이던 에스라스타 왕권 투쟁의 서막이 오른다. +예정.
[[페이시아 헤세테아]]는 생전 2명의 아들을 뒀었는데 이 중 장남이었던 [[페이시아 하르세노]]는 생후 23년만에 유전병으로 사망했다. 이런 상황 속 차남이던 [[페이시아 하르페시]]도 이른 나이에 소아암으로 사망한다. 이후 후사를 두지 않았던 헤세테아는 5771년 서거하며 4년 간 에스라스타 왕위가 공석이던 에스라스타 왕권 투쟁이 시작된다.  
 
[[페이시아 메르비시]]의 2남인 [[페이시아 후네테아]]의 적고손인 [[페이시아 에스티니아]]와 [[페이시아 세토이시]]의 2남인 [[페이시아 하스노이아]]의 5대손인 [[페이시아 네아토르]]가 주요 경쟁자로 부상하게 된다.
 
[[페이시아 에스티니아]]의 경우에는 나이가 어려 주변 친인척에게 조종당하기 일쑤였고 이는 [[페이시아 네아토르]]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데 좋은 무기가 된다.
 
이후, 수많은 국내외의 암투 끝에 [[페이시아 네아토르]]측이 왕정의회와 국민투표에서 과반수의 표를 얻으며 차기 국왕으로 선출된다.


== 에스라스타 자치령국 해체 ==
== 에스라스타 자치령국 해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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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베하니아는 기존부터 [[에스라스타]]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부족 국가가 많아 에스라스타 내에서는 억압을 기조로 내세우며 발달을 통한 혼혈 세대 양성으로 반발을 줄이곤 했다. 하지만, 유일하던 통합의 상징인 에스라스타 국왕이 궐위인 상태에서 본토는 지지하는 세력에 따라 절반으로 나뉜 혼란 상황에서 북베하니아의 일부 지역 유지들과 지역 시장들이 결탁해 [[베하니아 국민 공화국]]을 선포하며 [[에스라스타 연방 왕국]] 정부를 비롯한 [[베하니아]] 주정부측에도 선전포고하며 본격적인 독립 전쟁에 돌입한다.
북베하니아는 기존부터 [[에스라스타]]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부족 국가가 많아 에스라스타 내에서는 억압을 기조로 내세우며 발달을 통한 혼혈 세대 양성으로 반발을 줄이곤 했다. 하지만, 유일하던 통합의 상징인 에스라스타 국왕이 궐위인 상태에서 본토는 지지하는 세력에 따라 절반으로 나뉜 혼란 상황에서 북베하니아의 일부 지역 유지들과 지역 시장들이 결탁해 [[베하니아 국민 공화국]]을 선포하며 [[에스라스타 연방 왕국]] 정부를 비롯한 [[베하니아]] 주정부측에도 선전포고하며 본격적인 독립 전쟁에 돌입한다.


== 헤르시테스 자치령 총독의 [[북메디아 선언]] ==
== 헤르시테스 자치령 총독의 북메디아 선언 ==
헤르시테스의 첫번째 북메디아인 총독이었던 [[하르훔 디메운크티]]는 혼란하던 본토 상황을 단순히 관조하지 않고 자치령국 해체 이후 헤르시테스 주지사들과 합심해 [[북메디아 선언]], 즉 독립선언문을 에스라스타가 처음으로 헤르시테스에 내딘 호포르 항구에서 낭독한다.
헤르시테스의 첫번째 북메디아인 총독이었던 [[하르훔 디메운크티]]는 혼란하던 본토 상황을 단순히 관조하지 않고 자치령국 해체 이후 헤르시테스 주지사들과 합심해 [[북메디아 선언]], 즉 독립선언문을 에스라스타가 처음으로 헤르시테스에 내딘 호포르 항구에서 낭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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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스타 멸망 이후, [[티펠라트리아 국가평의회]]측은 총회의에서 [[디메르테스 자치령]]을 [[에스라스타 연방 왕국]]의 후신국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가입을 승인했다.
에스라스타 멸망 이후, [[티펠라트리아 국가평의회]]측은 총회의에서 [[디메르테스 자치령]]을 [[에스라스타 연방 왕국]]의 후신국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가입을 승인했다.


== [[테사시테스 자치령]]의 [[레니스카 합중국]] 건국 ==
== [[테사시테스 자치령]]의 레니스카 합중국 건국 ==
[[테사시테스 자치령]]은 독자적인 국가를 구상하며 전레니스카의 민주정 설파를 위해 [[레니스카 합중국]]을 건국했으나, 부족한 자원과 에스라스타 본국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던 산업 구조로 인해 에스라스타 멸망 이후, [[디메르테스 자치령]]과 함께 에스라스타 후신국으로 합병된다.
[[테사시테스 자치령]]은 독자적인 국가를 구상하며 전레니스카의 민주정 설파를 위해 [[레니스카 합중국]]을 건국했으나, 부족한 자원과 에스라스타 본국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던 산업 구조로 인해 에스라스타 멸망 이후, [[디메르테스 자치령]]과 함께 에스라스타 후신국으로 합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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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스타 국영 방송> |디아멘토 티만티니아}}
<에스라스타 국영 방송> |디아멘토 티만티니아}}
== 하르나야 1차 전시내각 ==
== 하르나야 1차 전시내각 ==



2025년 3월 9일 (일) 23:37 기준 최신판

에스라스타국기.svg
Tempran Nuit Esrastien
역사 지리 군사 정치 경제
행정 사회 외교 문화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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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왕국으로는 4122년 6월 11일부터, 공국으로는 약 1100년 경부터 존속해오던 에스라스타 연방 왕국의 멸망 과정과 그 이후에 대해 서술한 문서이다.

배경

긴 밤의 시대가 시작된 5867년 이전인 5700년경부터 에스라스타는 크고 작은 사회 문제들을 겪고 있었다. 이와 같은 문제가 하르나야 미토베시토의 전시 내각 선언과 함께 극단주의 세력이 준동하며 내부에서부터 터지기 시작하며 5880년경에 이르러서는 에스라스타는 해외 자치령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른다. 아래는 극심했던 사회문제와 이후 과정인 하르나야 1차 전시 내각에 대해 서술한 문서이다.

에스라스타 왕권 투쟁

페이시아 헤세테아는 생전 2명의 아들을 뒀었는데 이 중 장남이었던 페이시아 하르세노는 생후 23년만에 유전병으로 사망했다. 이런 상황 속 차남이던 페이시아 하르페시도 이른 나이에 소아암으로 사망한다. 이후 후사를 두지 않았던 헤세테아는 5771년 서거하며 4년 간 에스라스타 왕위가 공석이던 에스라스타 왕권 투쟁이 시작된다.

페이시아 메르비시의 2남인 페이시아 후네테아의 적고손인 페이시아 에스티니아페이시아 세토이시의 2남인 페이시아 하스노이아의 5대손인 페이시아 네아토르가 주요 경쟁자로 부상하게 된다.

페이시아 에스티니아의 경우에는 나이가 어려 주변 친인척에게 조종당하기 일쑤였고 이는 페이시아 네아토르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데 좋은 무기가 된다.

이후, 수많은 국내외의 암투 끝에 페이시아 네아토르측이 왕정의회와 국민투표에서 과반수의 표를 얻으며 차기 국왕으로 선출된다.

에스라스타 자치령국 해체

치열했던 왕권 투쟁 중, 에스라스타의 자치령들인 디메르테스 자치령, 헤르시테스 자치령, 테사시테스 자치령은 에스라스타의 간섭 기구인 에스라스타 자치령국을 세 개의 자치령 의원들만 참여한 회의에서 해체를 결의했다. 이후, 에스라스타측은 위법한 회의라며 무효를 요구했으나 자치령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베하니아 독립 전쟁

북베하니아는 기존부터 에스라스타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부족 국가가 많아 에스라스타 내에서는 억압을 기조로 내세우며 발달을 통한 혼혈 세대 양성으로 반발을 줄이곤 했다. 하지만, 유일하던 통합의 상징인 에스라스타 국왕이 궐위인 상태에서 본토는 지지하는 세력에 따라 절반으로 나뉜 혼란 상황에서 북베하니아의 일부 지역 유지들과 지역 시장들이 결탁해 베하니아 국민 공화국을 선포하며 에스라스타 연방 왕국 정부를 비롯한 베하니아 주정부측에도 선전포고하며 본격적인 독립 전쟁에 돌입한다.

헤르시테스 자치령 총독의 북메디아 선언

헤르시테스의 첫번째 북메디아인 총독이었던 하르훔 디메운크티는 혼란하던 본토 상황을 단순히 관조하지 않고 자치령국 해체 이후 헤르시테스 주지사들과 합심해 북메디아 선언, 즉 독립선언문을 에스라스타가 처음으로 헤르시테스에 내딘 호포르 항구에서 낭독한다.

디메르테스 자치령티펠라트리아 국가평의회 독자 가입 요구

디메르테스 자치령은 에스라스타 이전에 국가 체계가 성립된 적이 없었기에 친에스라스타 성향이 강했다. 이에, 티펠라트리아 국가평의회에 가입하여 훗날 에스라스타에 재건 원조를 도모하기 위해 독자 가입을 요구했으나 실패했다.

에스라스타 멸망 이후, 티펠라트리아 국가평의회측은 총회의에서 디메르테스 자치령에스라스타 연방 왕국의 후신국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가입을 승인했다.

테사시테스 자치령의 레니스카 합중국 건국

테사시테스 자치령은 독자적인 국가를 구상하며 전레니스카의 민주정 설파를 위해 레니스카 합중국을 건국했으나, 부족한 자원과 에스라스타 본국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던 산업 구조로 인해 에스라스타 멸망 이후, 디메르테스 자치령과 함께 에스라스타 후신국으로 합병된다.

긴 밤의 시대 도래

긴 밤의 시대가 도래하자 사회 혼란이 심화되며 하르나야 미토베시토는 전시내각을 구성하며 혼란을 타개하려 노력했다.

5867년 7월 5일, 에스라스타 연방 왕국 의 총리 하르나야 미토베시토는 자소크 철학단 펠리포크주 북동쪽 화산 폭발로 인한 전국적 이상 저온 현상 우려와 대기질을 비롯한 지각 약화와 같은 재난 상황으로 인해 작일 7월 4일 페르시아 헤테네아 전하가 참석한 왕정의회에서 결의, 금일 7월 5일 14시 30분 발효했다.

에스라스타 국가비상상태 발효의 경우, 주방위군의 국가 귀속을 완화하는 주속국법을 일시 해제하며 주방위에 필요한 일부 위법 행동을 허용하게 된다.

<에스라스타 국영 방송>

 
— 디아멘토 티만티니아

하르나야 1차 전시내각

하르나야 1차 전시내각에서는 주방위군을 본 정부에 귀속시키는 주속국법과 기타 군대에 대한 종속법을 대부분 효력 정지시키며 국내외 혼란을 무력으로 안정시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군부측의 득세로 이어지며 제 1야당인 민족진휼당이 제 2야당인 에스라스타의 힘과 연합하여 내각불신임으로 하르나야 1차 전시내각을 무너뜨린다.

에센테티 1차 전시내각

민족진휼당측의 당대표인 에센테티 에테르보르시는 주속국법의 효력 정지를 무효화시키며 군대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는 하르나야 정부가 구축했던 군부와 정부간의 "얕은 세력 균형"을 한순간에 정부측으로 끌어당기며 군부의 반발을 일으킨다. 이에 군부측 인사들이 국민군정당을 창설, 이어진 201대 왕정의회 선거에서 전 여당이던 에스라스타 국민당국민군정당이 크게 약진하였다. 이후 국민군정당측 의원들이 대거 국민당측으로 입당하며 내각이 전환되게 된다.

하르나야 2차 전시내각

다시 돌아온 하르나야 미토베시토는 계속되는 군부측의 세력 확장으로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천천히 주속국법에 대한 재활성화를 목표로 정책 방향성을 구성한다. 하지만, 이에 반발한 전 국민군정당 소속 의원들이 국민당에서 탈당하며 내각불신임으로 총리 재투표를 요구한다.

하지만, 하르나야측은 시국 상태에서는 총리의 재투표 요구가 무효화된다는 법을 증거로 들며 정권을 유지한다.

에스라스타 내전

총리 재투표를 묵살한 하르나야 정부측에 격분한 군부측은 정부 통제 하에 있는 일부 수도권과 군사적 요충지를 제외한 지역에서 대규모 쿠데타를 일으키며 이는 에스라스타 내전으로 이어진다.

결과 및 영향

에스라스타는 남부 남메디아에 위치하여 1세기를 아득히 넘는 세월 동안 그 고고함을 유지하였다. 다만, 짐의 덕이 부족하고 국가의 내부가 불온한 세력에게 유린 당하며 국민들이 고통을 겪음에 대해 깊은 안타까움을 통감했다.

이에, 본 에스라스타 연방 왕국의 왕정의회를 비롯한 삼권 기구의 수장인 나 페이시아 헤테네아는 이 시간부로 에스라스타 연방의 일시적 해체를 선포하며 국민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판단하여 빠른 시일 내로 다시 사성을 재건할 것을 천명하는 바이다.

 

에스라스타 연방 제 2왕국의 201대 총리, 나 하르나야 미토베시토는 에스라스타 신헌법 제 2조 9항

"에스라스타 연방 내부를 비롯한 외부에서 불가피한 혼란 상태와 국운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을 경우 국왕과 왕정의회에서 정당하게 선출된 총리의 재가 하 에스라스타 연방의 일시적 해체, 연방 왕국의 일시적 기능 정지를 선포할 수 있으며 이는 국왕과 총리가 동시에 진행하여야 한다 ."

에 따라, 국내를 온전히 안정시키기 전까지 에스라스타 연방 왕국 해체를 선포하는 바이다.

 

이에 따라, 에스라스타 연방 왕국은 5881월 3월 12일 일시적 해체, 사실상의 멸망을 맞이하였다.

주석

  1. 2025년 4월 11일 10시 08분 04초 기준. 미디어위키 표현식의 한계에 의해서 이 값은 정확하게 나타나기 힘들다. 정확한 값을 얻기 위해서는 사트/표준#Python 구현에서 설명하는 방법을 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디스코드 서버에는 차단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