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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 코르왕국]]은 발뤼르 공작의 가문인 사니뒤 가문을 왕으로 하여 구 [[세멘티 왕국]]의 동부 및 내륙지방<ref>엘도 공국, 에튀르니앙 왕국직할도시, 아르데마냥 후백국 및 왕령 해협지대 동부 일부</ref>을 차지하였다.
[[연안 코르왕국]]은 발뤼르 공작의 가문인 사니뒤 가문을 왕으로 하여 구 [[세멘티 왕국]]의 동부 및 내륙지방<ref>엘도 공국, 에튀르니앙 왕국직할도시, 아르데마냥 후백국 및 왕령 해협지대 동부 일부</ref>을 차지하였다.


[[셀레드라유-카르니에 왕국]]은 바넨사 왕조의 폐위되었던 니렌 2세를 복위시켰다. 구 세멘티 왕국의 왕조를 내세운 덕분에 [[연안 코르왕국]]과는 달리 정통성 문제로 왕권에 대한 위협을 미연에 제거할 수 있었다. [[셀레드라유-카르니에 왕국]]은 구 [[세멘티 왕국]]의 서부 및 해협지방<ref>셀레드라유-상 카르니에 공국, 카르니에 대공국, 트레페유 왕국직할도시</ref>을 차지하였다.
[[셀레드라유-카르니에 왕국]]은 바넨사 왕조의 폐위되었던 니렌 2세를 복위시켰다. 구 세멘티 왕국의 왕조를 내세운 덕분에 [[연안 코르왕국]]과는 달리 정통성 문제로 왕권에 대한 위협을 미연에 제거할 수 있었다. [[셀레드라유-카르니에 왕국]]은 구 [[세멘티 왕국]]의 서부 및 해협지방<ref>셀레드라유-상 카르니에 공국, 카르니에 대공국, 트레페유 왕국직할도시, 왕령 해협지대 대부분의 지역</ref>을 차지하였다.


[[자텐다인]]들은 경제적으로 특혜를 다시 받았으며, 자수르만인들과 함께 새로운 왕국들의 상인계층이 되었다.
[[자텐다인]]들은 경제적으로 특혜를 다시 받았으며, 자수르만인들과 함께 새로운 왕국들의 상인계층이 되었다.

2025년 2월 28일 (금) 23:1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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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멘티-네라크뤼스 공국

파랑 기병대 파랑 기병대

Lüfs Ebriã!
레나루의 아이들아, 우리의 발자취가 흐른지 2833년 4월 4일[1]만큼의 시간이 흘렀단다.

개요

5867년 7월 2일 일어난 긴 밤의 시대로 인해 메디아 해협의 국가인 세멘티 왕국(세멘티어: Mikamora Sementie)의 붕괴 과정에 대해 서술한 문서이다.

긴 밤의 시대의 도래

사트.svg 자세한 내용은 긴 밤의 시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867년 7월 2일, 자소크 철학단의 펠리포크 화산의 분출로 인해 북반구에 위치한 대부분의 국가는 평균 기온 감소 및 생산성 저하, 냉해로 인한 국가적 위기에 직면했다. 특히 세멘티 왕국의 주요 교역상대였던 자소크 철학단아르토이트 제국이 위기를 겪으면서 재정적인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니렌 2세의 계승권 박탈

국가 전체가 북반구로부터 시작된 경제 위기에 고통받고 있을 무렵, 세멘티 왕국의 왕이었던 르델렌 3세[2]가 승하하였다. 왕관의회[3][4]에 의해 인정받은 제 1계승권자였던 바넨사 왕조[5]의 니렌 2세[6]에 대한 왕권비준 절차를 진행하던 중 니렌 2세가 뤼페를 신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본디, 세멘티 왕국의 국교는 파랑전승이나, 최대 종교는 왕국의 다수를 차지하는 코르인들의 종교인 뤼페였다. 세멘티 왕국 휘하의 대부분의 봉신령은 뤼페 신자들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고, 세멘티인들이 사는 3개 지역[7]을 제외하면 파랑전승 신도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이다.[8] 니렌 2세의 개종으로 인한 왕권 박탈은 각 봉신령의 의회에서 크나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왕관의회는 바넨사 왕조의 니렌 2세 대신 제 2계승권자였던 마르크할더 가문[9]의 아델프레트를 파랑전승 개종을 조건으로 델프르 1세로 삼아 왕위를 수여하였다. 아르토이트 제국과 관련이 없던 각 봉신령들은 아르토이트 계통의 후계자가 왕이 되는 것에 반대의사를 표했으며, 셀레드라유-상 카르니에 공국, 엘도 공국에서는 지역의 유력 귀족을 왕의 섭정으로 세워 왕권비준을 통과시키는 대신 반독립적인 국정운영을 진행하였다.

네뤼크 암살 사건과 엘도 반대파 학살

델프르 1세의 즉위 이후 엘도 공국은 섭정으로 네뤼크 공작을, 셀레드라유-상 카르니에 공국은 발뤼르 공작을 세웠다. 세멘티 왕국은 독립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섭정들을 눈엣가시처럼 생각하고 있었고, 5873년 2월 엘도 공국의 섭정 네뤼크 공작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자텐다 상인반란

밀리토호스 타코뤼 왕국의 수도권이었던 카르니유 지방에는 세멘티 왕국이 세워지기 이전부터 러시져미르 자텐다라고 불리는 자텐다인들의 일파가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는 무역로를 따라 흘러들어온 자텐다인들의 후손이었다. 이들은 밀리토호스 타코뤼 왕국 시절부터 제국의 대 북메디아 무역에 힘써왔으며, 자텐다와 어스몬 신앙권 및 가베 연방을 잇는 무역로에서 수많은 특혜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세멘티 왕국아르토이트 제국의 산하에서 사실상 이탈하면서 과거 주종관계에 있었던 아르토이트 제국의 침략을 두려워하게 되어 아르토이트인들에게 특혜를 일부 할양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아르토이트인들의 북방식민운동은 대부분 종료되어 미세자리아 및 메디아 해협 남부지방은 대부분 아르토이트인이 차지하고 있었고 세멘티 왕국으로 아르토이트의 상인들과 기술자들이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아르토이트인들은 자신들에게 특혜를 부여하는 세멘티 왕국에 충성적이었고, 수많은 아르토이트계 귀족들이 세멘티의 왕관의회 및 요직을 차지하면서 자텐다인들과 타 종족들의 분노가 쌓여가기 시작하였다.

이 와중 델프르 1세의 즉위 동시에 체결된 왕권비준중 일부를 직권로 환수하는 과정[10]에서 자텐다계 상인들의 이권이 일부 아르토이트계 상인에게 대신 주어지게 되었다. 트레페유의 중앙 시장에는 아르토이트 상점이 하나둘씩 생겨나게 되었고, 아르토이트계 환전소와 재원거래소가 생겨나면서 자텐다인들은 재정적인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자텐다인들은 AR 베센AR 에르뎀에 도움을 청하는 한편, 세멘티 왕국에 항의를 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AR 베센AR 에르뎀 역시 메디아 해협에서 자텐다계 무역점유가 위협받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고, 러시져미르 자텐다를 지원하여 반란을 획책하도록 하게 된다.

5875년 1월, 트레페유에서 AR 베센AR 에르뎀의 지원을 받은 자텐다 상인들이 제국에 반란을 일으켰으며, 델프르 1세를 고깝게 보던 코르인들이 합세하여 본격적인 세멘티 전쟁이 시작된다.

세멘티 왕관전쟁

트레페유와 카르니에에서 자텐다인들의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제국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고, 세멘티 왕국은 진압을 위해 벽림기사단을 북메디아로 파견하게 된다. 왕령 해협지대에서 반란이 일어난 카르니에 대공국으로 기사단을 이동시키려했으나, 셀레드라유-상 카르니에 공국의 영지를 거치지 않고서야 지나갈 수 없었다. 네뤼크 암살사건 및 반대파 학살 이후 본국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해오던 셀레드라유-상 카르니에 공국은 기사단의 통행을 거부하였으나 기사단은 왕령이라는 명분으로 무시하고 지나가게 된다. 이와 같은 무단통행사건은 세멘티 왕국 휘하의 봉신령들의 반감을 크게 샀고, 자텐다인들의 이권을 위한 반란에는 코르인들 전원이 합세하여 세멘티인들이 사는 지역을 제외한 왕국의 전 지역이 세멘티 왕국에 적대적인 상태가 되어버린다.

5875년에서 5876년까지 세멘티인들이 사는 왕령 해협지대를 제외한 모든 세멘티 왕국의 봉신령에서는 차례차례 반란이 일어나게 되고, 이는 왕국의 해체를 불러올 세멘티 왕관전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왕국의 해체

5881년 2월 니에프가 코르 독립군에게 함락되었으며, 5883년 4월, 니에프 인근의 도시인 리솀데일에서 종전 협정을 치르게 된다.

이로인해, 엘도 공국과 셀레드라유-상 카르니에 공국의 독립이 허용되었으며, 칭왕 및 휘하 봉신령 흡수가 인정되어 각각 연안 코르왕국셀레드라유-카르니에 왕국이 되었다. 양국은 코르인들의 국가였으나 각 지역의 이권을 두고 타협하는 과정에서 통일이 불발되었다.[11]

연안 코르왕국은 발뤼르 공작의 가문인 사니뒤 가문을 왕으로 하여 구 세멘티 왕국의 동부 및 내륙지방[12]을 차지하였다.

셀레드라유-카르니에 왕국은 바넨사 왕조의 폐위되었던 니렌 2세를 복위시켰다. 구 세멘티 왕국의 왕조를 내세운 덕분에 연안 코르왕국과는 달리 정통성 문제로 왕권에 대한 위협을 미연에 제거할 수 있었다. 셀레드라유-카르니에 왕국은 구 세멘티 왕국의 서부 및 해협지방[13]을 차지하였다.

자텐다인들은 경제적으로 특혜를 다시 받았으며, 자수르만인들과 함께 새로운 왕국들의 상인계층이 되었다.

아르토이트인들에게 내려진 북메디아 대륙에서의 특혜는 철회되었으나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졌고, 아르토이트인들의 북메디아 이주는 계속되었다.

독립된 지역의 세멘티인들은 해당 지역에 계속 거주하는 것이 인정되었다. 종족간의 전쟁보다 이해집단간의 전쟁으로써의 성격이 강했기에 각 종족간의 증오심은 표출되지 않았다.

세멘티 왕국은 니에프를 겨우 돌려받는 조건으로 전쟁배상을 물어야 했으며, 전쟁 종료 시점까지 코르 독립군들이 점령하지 못했던 에르카 왕국직할도시 및 도서지부는 세멘티 왕국에 동군연합 형태로 이관되었다.
마르크할더 가문은 축출되지 않았으나, 델프르 1세는 패전의 책임을 물어 왕위를 알브레흐트 폰 마르크할더에게 선양하고 아르토이트 제국의 본가로 도망치듯 떠나게 된다. 알브레흐트 폰 마르크할더는 엘페르 1세라는 이름으로 세멘티 왕국의 새로운 왕이 된다.
세멘티 왕국은 세멘티 왕관령과 네라크뤼스 공국, 니에프, 에르카를 합병하여 해협 왕국을 설립하였으며, 이전과 같은 패권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해협 왕국은 사실상 아르토이트 제국의 영향권 아래 다시 놓이게 된다.

이로써, 5512년부터 371년간 이어져오던 세멘티 왕국의 강자의 시대, 아르카륄롱은 왕국의 해체로 끝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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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2025년 4월 25일 18시 21분 13초 기준. 미디어위키 표현식의 한계에 의해서 이 값은 정확하게 나타나기 힘들다. 정확한 값을 얻기 위해서는 사트/표준#Python 구현에서 설명하는 방법을 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세멘티 왕국의 7대 여왕, 5834~5871 재위
  3. 세멘티 왕령의 의회
  4. 세멘티 왕국의 왕위는 구 세멘티 공국의 지역인 세멘티 왕관령의 3개 지역인 세멘티, 바리엘, 실 레위니스의 왕관의회의 동의를 거친 이후 각 봉신령에서 개별적인 왕권비준을 통과한 뒤 승인된다.
  5. 윈드리드 왕조의 단절 이후 세멘티 왕국에 들어선 2번째 왕조, 세멘티계 왕조이다.
  6. 르델렌 3세의 아들
  7. 세멘티 왕관령, 네라크뤼스 공국, 왕령 해협지대
  8. 자텐다인이 거주하는 카르니에와 트레페유의 파랑전승은 세멘티의 파랑전승이 아닌 자텐다의 파랑전승이니 예외로 친다.
  9. 이름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아르토이트 계통의 가문이다.
  10. 세멘티 왕국에서는 대부분의 왕이 즉위시 내려진 왕권 비중을 재위기간동안 회수하여 중앙집중 체계를 유지하였다.
  11. 이는 세멘티 왕국의 기민한 외교단이 기여했기 때문이다.
  12. 엘도 공국, 에튀르니앙 왕국직할도시, 아르데마냥 후백국 및 왕령 해협지대 동부 일부
  13. 셀레드라유-상 카르니에 공국, 카르니에 대공국, 트레페유 왕국직할도시, 왕령 해협지대 대부분의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