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갑인을 대접하는 법은 자소크력 5339년 AR 헤브녀트 국영출판사에서 출간된 단편소설로, 갑인 사회는 물론 전사트적으로도 나름 인기를 끌었다.
내용
젊은 갑인 남성 도신 터치프(Doshin Tåsciv)는 방에 홀로 누워 복어 독 마약인 차딘드럴을 씹어대고 있다. 편안한 자세와는 상반되게 그의 표정은 불안해보이며, 숨도 고르지 않다. 그때, 방문 너머로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좋은 아침입니다, 터치프 경. 취향을 고려한 맞춤형 음식을 문 앞에 준비해두었으니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엄격하게 선별한 유기농 식재료로만 만들었기에 건강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덧붙여서, 마약은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유의하세요. 저희는 터치프 경의 건강이 나빠지는 걸 원치 않습니다."
도신은 씹고 있던 차딘드럴을 방바닥 구석에 신경질적으로 뱉어내버리고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떠난 지 얼마나 됐지?"
"5,104,629,801,375……"
"알아듣게 말해, 자소크력으로!"
"자소크력으로는 이틀 지났습니다."
"그래, 고작 이틀 되었다 이거군."
도신은 결국 새 차딘드럴 한 알을 꺼내 씹기 시작한다.
2주 전, AR 헤브녀트 영해에 미등록 선박 1척이 불법 입국 도중 적발된다. 그러나 선박의 생김새가 워낙 기이하여, 두려움을 느낀 출입국관리국은 군의 도움으로 조사를 진행한다.
선원들의 정체는 바로 사이보그 진균류 종족인 저누보티스(Zynuvotis). 이들을 실제로 접할 기회는 대단히 희소한 것이었으므로, AR 헤브녀트는 손님을 맞을 준비로 모두 긴장과 흥분 상태에 빠진다. 이 생소한 고등 문명 종족은 방송국의 좋은 표적이 되었고, 역사적인 회담 자리를 담기 위해 사트 각지에서 취재진이 도착한다.
회담 당일, 약속한 시간이 되자 마침내 저누보티스의 대변인이 나타난다. 현장의 소란스럽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압도당하고, 모두가 숨을 죽인다.
"실시간 자체 통역 - 사트 전역 동시 송출."
대변인의 안면부에서 홀로그램 영상이 사출된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평화와 번영을 누리기 위해 왔습니다. 우리는 진균류를 기반으로 기계지능을 결합해 탄생한 인공생명체로, 이미 사트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을 학습했습니다."
말마따나 합금 소재 외골격의 관절 틈새로 삐져나온 무수한 자실체는 대변인의 자기소개를 증명하는 듯 했다.
"우리의 목적은 오로지 단 하나, 갑인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입니다. 양 종족의 활발한 교류를 촉진하고, 상호이익 관계를 형성합시다. 저희를 믿으신다면 무한한 지식, 무한한 활력, 무한한 평화, 무한한 풍요는 이미 약속되었습니다."
대변인이 단호한 어조로 대상을 제한하고는 달콤한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자, 차마 실망을 감추지 못한 이들도 적잖다.
"하지만 우리가 AR 헤브녀트의 영해에서 함께 사는 것은 갑인 여러분을 존중하지 못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우리에게도 불가능하므로, 선별된 인원을 우리 종족의 집결지로 초대하여 고도의 복지를 제공하겠습니다."
"선별이요? 그럼 혜택은 불균등하게 지급될 것이란 말입니까? 그렇게 하다간 오히려 새로운 사회 문제를 초래하게 될 것 같은데요."
"그런 걱정은 접어두셔도 좋습니다. 설령 당장 초대받지 못하더라도 실망치 마십시오. 이는 자그마치 10년 계획으로서, 차차 갑인이라면 모두가 누리게 될 것입니다."
"듣자하니 너무나도 이상하군요. 느닷없이 찾아와선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무일푼 봉사를 하시겠다?"
"모든 것은 일종의 본성, 즉 프로그래밍에 따른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저 본능대로 이행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겠습니다. 누리고 싶으시다면, 저희를 믿으십시오."
대변인은 대범하게도 자신의 데이터 일체가 담긴 중추 저장장치의 복사본을 남기고는, 회담을 마무리하고 훌쩍 떠나버렸다.
도신 터치프는 본디 정보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으로, 대변인이 남긴 데이터를 분석하는 작업을 도맡아 진행하게 되었다.
"잘 되어 가십니까?"
"아뇨, 머리가 터질 것 같네요."
"대체 뭐 어떻길래요?"
"어떻냐구요? 말하자면 아주 골 때리죠. 현존하는 프로그래밍 언어 중 그 무엇과도 유사점이 발견되지 않더라고요. 좋게 말하자면 독창적인건데, 흠, 쉽지 않네요."
"아하. 그나저나 약속 기한이 고작 2주 남았어요. 좀 서두릅시다."
"처음부터 그 말을 하려고 오셨군그래. 알겠습니다. 근데, 꼭 2주 안에 끝마치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난답디까?"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군에서는 그들을 침략자로 의심하겠지만, 사실 툭 까놓고 말해서 그렇게나 천사 같은 존재를 본 적이 없어요. 아무래도 이건 신의 은총 시리즈에 옵션이 하나 추가된 게 아닐까요?"
"도신 씨답지 않게 종교적인 비유를 하시는군요."
그런데 그 때, 갑자기 한 여인이 작업실로 찾아온다.
"성공했어요! 데이터 분석에 성공했다구요!"
분석 내용을 보자마자, 적개심을 품던 사람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한다. 이종족에게 우호적이었던 도신은 미소를 머금으며 기뻐한다.
"세상에나."
"전 진작 믿고 있었습니다."
"갑인을 대접하는 법이라니… 거짓말이 아니었단 거군요."
학회에서는 언다이 요리온(Åndae Jorion) 박사의 연구 결과가 발표된다. 내용은 저누보티스를 대상으로 한 거짓말 탐지기 적용 실험이다.
1단계에서는 색종이를 사용한 색깔 분별 실험을 진행한다. 저누보티스는 당연히 손쉽게 대답하고, 거짓말 탐지 결과도 "진실"이다. 2단계에서는 반대로, "거짓"이라는 결과를 유도한다. 박사는 저누보티스에게 "걸어서"라고 대답할 것을 지시한 다음, 그들이 AR 헤브녀트로 온 방법을 질문한다. 저누보티스는 약속을 지켜 대답하고, 당연히 거짓말 탐지 결과는 "거짓"으로 나온다.
이로써 저누보티스에게도 사트인들이 사용하는 거짓말 탐지기가 적용됨을 확인한 박사는, 진정으로 궁금한 사항을 묻는다.
"당신들에게 탑재된 프로그램, 그러니까 본능은 갑인을 극진히 대접하게 되어있으며, 당신들은 그 내용을 실현하기 위해 여기 왔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를 미워하거나 싫어하거나, 죽이고 싶으십니까?"
"아뇨, 미워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끼신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저누보티스의 긍정적인 대답 모두가, 빠짐없이 진실이다.
"서두르지 마시고 잊으신 건 없는지 확인하신 뒤 탑승해주세요. 잠시 후 이 여객선은 우리 종족의 집결지로 향할 것입니다."
탑승 수속을 시작한다. 초대된 사람들은 기대에 부풀어 대화를 나눈다. 들뜬 목소리가 듣기에 나쁘지 않다.
"그거 들었어요? 지금 우리 가는 데 말이에요,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고 천국 같은 날씨가 계속된다던데! 우리 동생도 같이 갈 수 있었음 좋았을 걸, 참 아쉽네요."
"호캉스? 이젠 하나도 안 부럽지 뭐. 듣자하니 초호화 호텔급 스위트룸은 물론이고, 고급 레스토랑이든, 수영장이든, 완전 공짜로 즐길 수 있다던데요."
"이거 한 번 가면 못 돌아오는 거 아냐? 너무 좋아서?"
승무원들은 너무 바쁜 나머지, 삐뚤어진 스카프도 채 고쳐 매지 못할 정도다. 고국을 떠나 오랜 기간 이종족의 땅에 머문다고 하지만, 누구 하나 두려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소풍 가는 어린이마냥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 무렵, 도신은 빌로르를 뚱땅거리며 시간을 떼우고 있는데, 그와 함께 데이터 분석 일을 하던 여직원 츄르타슈 졔존(Scurtash Szezon)이 찾아온다.
"탑승 수속 시작했다는데요, 들으셨어요?"
"네, 근데 지금 가면 혼잡하대요. 좀 느긋하게 가려고요."
"도대체 몇 명이나 가는 거래요? 엄청 많긴 하던데."
"글쎄요, 대략 어림잡아 헤브녀트 인구의 1% 정도에 맞먹는다던데요? 뭐, 물론 소식 듣고 찾아온 메티샤 놈들도 많다보니 자세히는 모르겠어요."
"무섭진 않으세요?"
"전혀요? 무서울 게 하나도 없는데 뭐가 무서워요. 우리를 대접하려고 직접 찾아온 착한 친구들 아닙니까. 츄르타슈 씨도 요리온 박사님 발표 보셨을 거 아녜요?"
"그건 그렇죠… 하지만… 사실 전 아직도 좀 의심스러워요."
"에이, 걱정마세요. 아무 문제 없을 건데요. 그건 그렇고, 다음에는 같이 초대 받아서 가자고요. 내가 이번에 점수를 좀 따면, 내 말이 잘 먹혀들지도 몰라."
여유롭게 떠나려 하는 도신과, 직접 데이터를 분석했음에도 어쩐지 불안한 츄르타슈. 결국 오래지 않아, 도신은 탑승 수속 마감 직전에 항구에 도착해 여객선에 오른다. 저누보티스들은 자신들끼리만 알 수 있는 수신호를 주고받더니, 비로소 출항한다.
"도신 씨!"
갑자기 들려오는 츄르타슈의 목소리. 츄르타슈는 서둘러 도신에게 다가가 그를 말리려 하지만, 저누보티스들이 그녀를 막아세운다.
"엇, 츄르타슈 씨! 뭘 여기까지 인사하러 오고 그래요, 일은 어쩌구! 내가 기념품 많이 사갈테니까 걱정 마요!"
"도신 씨! 그 여객선에 타지 마세요! 우린 다 속은 거라구요!"
"뭐라구요?"
"분석이 잘못됐어요, 아니, 우리가 잘못 받아들였죠! 갑인을 대접하는 법은 요리 레시피를 의미하는 거에요!"
그 순간, 도신은 깨닫는다. 저누보티스들이 말한 복지라는 건, 굳이 말하자면 건강한 식품을 소비하기 위한 동물복지에 가까운 개념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안돼! 이거 놔!"
도신은 사태를 파악하고 여객선으로 내리려 시도한다. 그러나 그는 소중한 식재료. 저누보티스에게 붙잡힌 도신은 순식간에 제압당한다. 자그마치 3만 명의 갑인을 실은 여객선, 아니 식품운반선은 출항한다.
회상은 끝이다. 이제 더 이상 예전의 삶은 되찾을 수 없다.
"도신 씨, 점심 시간입니다. 부담없이 즐겨주세요!"
참다 못한 도신은 점심 식사를 그냥 집어서 바닥에 내동댕이 쳐버린다. 그러나 저누보티스가 곧장 들이닥쳐 바닥에 떨어진 음식들을 주워담는다.
"식사하세요, 터치프 경. 살이 빠지시면 안되니까요."
아뿔싸, 집게에 묻은 양념을 무심코 빨아먹고야 말았다. 양념 맛을 본 도신은 고뇌한다. 이틀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버티는 것도 한계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늘의 메인디쉬, 치즈버터구이입니다. 살이 아주 꽉찬 상등품으로 만들었어요."
그는 붉게 물든 얼굴만을 남겼다.
도보게
- 본 문서는 환상특급 S3-24 에피소드인 "인간을 대접하기 위하여(To Serve Man)"를 사트식으로 오마주한 것이다.
각주
- ↑ 2024년 11월 13일 07시 01분 22초 기준. 미디어위키 표현식의 한계에 의해서 이 값은 정확하게 나타나기 힘들다. 정확한 값을 얻기 위해서는 사트/표준#Python 구현에서 설명하는 방법을 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 디스코드 서버에는 차단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