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스타 연방 왕국의 역사

Z0k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6월 12일 (일) 22:36 판

에스라스타 연방 왕국의 역사를 다룬 문서

에스라스타인의 분화(分化) 과정

에스라스타인은 지금의 에스라스타 남부에 정착했는데 이 중 지금의 트우레족과 코르카냐족이 북쪽으로 이동하며 분화된다. 카스메니족은 에스라스타 남부에서 일어난 부족 전쟁에 휘말려 동부로 밀려나 분화되었다. 테이아족은 부족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쥐고 자신의 터전도 지켰다.

테이아족의 부흥과 에스라스타 봉기

테이아족은 일반국가에 버금갈 정도로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테이아족은 철저한 신분체계로 나뉘어져 있었고 결국,신분체계에 반발하며 테이아족 피지배층을 포함해 차별받던 남부 트우레,코르카냐,카스메니족이 들고 일어나 에스라스타 봉기가 발생한다. 당시 테이아족의 족장이던 가우레 기스멜카는 이를 단순한 시위로 생각해 소수의 병력을 보내 진압하려 하였으나 생각보다 스케일이 컸고 반테이아군은 테이아의 중심지로 행진했다. 이 사건을 흔히 "에스라스타의 행진"이라 한다. 반테이아군은 마을을 지나며 점점 세력을 불려나갔고 테이아군에서도 이탈자가 발생해 승기가 완전히 반테이아군으로 넘어갔다. 테이아 수뇌부는 사건을 크게 만든 가우레 기스멜카를 파문시키고 새로이 게타멜라 기우셀카를 세운다. 그리고 반테이아군과 협상을 요청하는데 이것이 바로 에스라스타 연방 왕국의 시초가 되는 "델레카 협정"이다

델레카 협정과 부족사회의 끝

델레카 협정에는 신분체계 철폐와 현 테이아 수뇌부 청산이 주 내용이었는데 당연히도 테이아 수뇌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반테이아군은 델레카 협정을 조금 축소시킨 "펠레사넬 협정"을 제시한다. 테이아 수뇌부는 이런 식으로 계속 거부하면 자신들에게도 이점이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였는지 펠레사넬 협정도 거절하였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반테이아군은 테이아의 중심지인 벨리아센으로 쳐들어간다.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테이아군은 반테이아군에게 참패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테이아 수뇌부 25명 중 3명을 제외한 전부가 사형당한다. 여기서 반테이아군은 에스라스타 공국을 세우지만...

경제 침체와 알라사타 선언

반테이아군도 변방에서 농사를 짓던 일반 시민이었기에 경제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고 결국 일반국가 수준으로 올라갔던 에스라스타의 경제는 다시 바닥을 친다. 과거보다 더 살기 어려워진 환경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테이아의 복권을 원했는데 지금의 엘리엔시아 지역에서 그 유명한 알라사타 선언이 시작된다. 알라사타 선언은 엘리엔시아에서 저명하던 한 노인이 삶이 힘들어 마을 사람들을 불러 한 마디 한 것이 시초였다. 그 노인은 테이아가 돌아오면 경제는 다시 좋아지겠지만 우리 삶이 힘들어 질 것이고 이대로 자유를 좇아 반테이아가 집권하면 우리의 삶이 안 좋아 질 것이라 말한다. 사람들은 그 노인에게 그럼 어떻게 해야하냐고 물었다. 노인이 말하길 "경제와 자유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알라사타 선언의 영향과 4왕조의 등장

엘리엔시아의 노인의 말은 전 에스라스타에 퍼졌고 곧 반테이아군의 귀에도 들어가게 된다. 반테이아군은 자신들이 경제에 어둡고,국가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노인을 찾아가게 되고 그 노인은 해결책으로 이렇게 말한다. 과거 4민족이 섬기던 4왕조를 부활시키자고 4왕조는 반테이아와 테이아의 내전이 한창이던 시기 각 부족에서 가장 신성하다 여겨진 4가문이 왕을 자처했지만 반테이아의 집권과 부족의 반대로 사라진 왕조였다. 4왕조는 테이아의 펠레니아,카스메니의 일레스카,트우레의 엘루울타,코르카냐의 엑테토르테이다. 반테이아는 직접 가문들의 문을 두드려 수도 엘반티아로 데리고 왔고 펠레니아,일레스카,엘루울타,엑테토르테의 4자대면이 시작된다.

아코아 4자협정과 에스라스타 연방 왕국의 건국

그 날 엘반티아에는 전운이 드리웠다. 에스라스타의 역사에선 항상 협정이라하고 제대로 된 협정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엘반티아의 사람들은 모두 피난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4민족의 주력군도 전부 엘반티아 옆 칼렘베이에서 대기 중이였다. 그리고 약 하루 후 테이아,카스메니,트우레,코르카냐의 가주들은 모두 무혈로 자신의 집까지 돌아왔고 그 다음 날, 6월 11일 에스라스타 연방 왕국이 건국된다. 아코아 협정에 따르면 꽃이 피면 테이아의 왕이 집권하고,초록색 잎이 나면 카스메니가,단풍이 들면 트우레가,첫눈이 내리는 날부턴 코르카냐가 집권한다라 써있다. 하지만 이 애매모호한 조항은 건국 10년이 되고 다시 열린 제 2차 아코아 4자협정에서 개편된다.

트우레 탄압과 코르카냐 대학살

이렇게 무사히 연방 왕국이 자리 잡는 듯 하였으나 상대적으로 적었던 트우레와 코르카냐는 테이아와 카스메니에게 휘둘렸는데 대표적으로 2분기사건으로 테이아와 카스메니가 트우레와 코르카냐의 집권기간에 왕정의회를 나오지 않는 사건이 발생했다. 트우레와 코르카냐는 항의했지만 묵살되었고 결국 테이아가 다시 집권하며 에스라스타의 흑역사가 써진다. 테이아는 2분기집권을 위해 트우레인들의 특별도시를 의도적으로 봉쇄하였고 상대적 북쪽에 사는 코르카냐인들을 북쪽 야만인이라 몰아세워 사회적으로 고립시켰다. 트우레인들은 이 같은 차별에 반대해 우루투시에서 시위를 하는데 이 시위 과정에서 테이아인 1명이 부상당한 것을 명분으로 테이아가 트우레 시위를 탄압하면서 시위 했던 트우레인 중 21%가 사망하거나 부상당하게 된다. 그렇게 테이아의 집권기간이 지나고 카스메니가 집권하는데 카스메니는 코르카냐인들이 눈에 걸렸고 북방 야만인들을 핑계로 코르카냐인들을 엘루비안냐의 갈라시타숲에 격리하고 불을 질러버리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다. 이 뿐만이 아니라 코르카냐 특별주에서도 카스메니군이 항상 배치되어있었고 지나가다 보이기만 해도 죽이는 잔인한 학살극이 진행됐다 결국 참다 못한 트우레와 코르카냐인들은 베나울테르에 모여 무력시위를 시작했고 트우레,코르카냐 및 소수민족 차별 금지에 관한 법률이 통과하며 탄압과 학살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이 당시 코르카냐의 정치가 멜리가울 시메키말사가 연설을 했는데 그 중 현재까지 내려오는 말이 있다.

"만약 우리가 더 신체적으로 강하고,기술적으로 진보되어있으면 이렇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코르카냐인이 아닌 테이아,카스메니인이었다면 이렇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에스라스타라는 왕국이 아닌 개별적인 자주국에서 살고 있었다면 이렇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바꿔 냈고 우리의 후대는 이렇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제 3차 아코아 4자협정과 법의 대대적 개정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