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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에스라스타 연방 왕국]] | | #넘겨주기 [[에스라스타 연방 왕국/역사]] |
| [[에스라스타 연방 왕국]]의 역사를 다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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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스라스타인의 분화(分化) 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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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라스타인은 지금의 에스라스타 남부에 정착했는데 이 중 지금의 트우레족과 코르카냐족이 북쪽으로 이동하며 분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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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스메니족은 에스라스타 남부에서 일어난 부족 전쟁에 휘말려 동부로 밀려나 분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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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아족은 부족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쥐고 자신의 터전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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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이아족의 부흥과 에스라스타 봉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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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아족은 일반국가에 버금갈 정도로 발전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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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테이아족은 철저한 신분체계로 나뉘어져 있었고 결국,신분체계에 반발하며 테이아족 피지배층을 포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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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받던 남부 트우레,코르카냐,카스메니족이 들고 일어나 에스라스타 봉기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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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테이아족의 족장이던 가우레 기스멜카는 이를 단순한 시위로 생각해 소수의 병력을 보내 진압하려 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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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보다 스케일이 컸고 반테이아군은 테이아의 중심지로 행진했다. 이 사건을 흔히 "에스라스타의 행진"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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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테이아군은 마을을 지나며 점점 세력을 불려나갔고 테이아군에서도 이탈자가 발생해 승기가 완전히 반테이아군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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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아 수뇌부는 사건을 크게 만든 가우레 기스멜카를 파문시키고 새로이 게타멜라 기우셀카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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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반테이아군과 협상을 요청하는데 이것이 바로 에스라스타 연방 왕국의 시초가 되는 "델레카 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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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델레카 협정과 부족사회의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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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델레카 협정에는 신분체계 철폐와 현 테이아 수뇌부 청산이 주 내용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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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히도 테이아 수뇌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반테이아군은 델레카 협정을 조금 축소시킨 "펠레사넬 협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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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아 수뇌부는 이런 식으로 계속 거부하면 자신들에게도 이점이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였는지 펠레사넬 협정도 거절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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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반테이아군은 테이아의 중심지인 벨리아센으로 쳐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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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테이아군은 반테이아군에게 참패할 수 밖에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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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테이아 수뇌부 25명 중 3명을 제외한 전부가 사형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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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반테이아군은 에스라스타 공국을 세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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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침체와 알라사타 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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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테이아군도 변방에서 농사를 짓던 일반 시민이었기에 경제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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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일반국가 수준으로 올라갔던 에스라스타의 경제는 다시 바닥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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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보다 더 살기 어려워진 환경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테이아의 복권을 원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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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엘리엔시아 지역에서 그 유명한 알라사타 선언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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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사타 선언은 엘리엔시아에서 저명하던 한 노인이 삶이 힘들어 마을 사람들을 불러 한 마디 한 것이 시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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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노인은 테이아가 돌아오면 경제는 다시 좋아지겠지만 우리 삶이 힘들어 질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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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 자유를 좇아 반테이아가 집권하면 우리의 삶이 안 좋아 질 것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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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그 노인에게 그럼 어떻게 해야하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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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이 말하길 "경제와 자유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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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라사타 선언의 영향과 4왕조의 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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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엔시아의 노인의 말은 전 에스라스타에 퍼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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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반테이아군의 귀에도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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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테이아군은 자신들이 경제에 어둡고,국가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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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노인을 찾아가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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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노인은 해결책으로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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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4민족이 섬기던 4왕조를 부활시키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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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왕조는 반테이아와 테이아의 내전이 한창이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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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부족에서 가장 신성하다 여겨진 4가문이 왕을 자처했지만 반테이아의 집권과 부족의 반대로 사라진 왕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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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왕조는 테이아의 펠레니아,카스메니의 일레스카,트우레의 엘루울타,코르카냐의 엑테토르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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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테이아는 직접 가문들의 문을 두드려 수도 엘반티아로 데리고 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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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펠레니아,일레스카,엘루울타,엑테토르테의 4자대면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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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코아 4자협정과 에스라스타 연방 왕국의 건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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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엘반티아에는 전운이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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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라스타의 역사에선 항상 협정이라하고 제대로 된 협정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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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문인지 엘반티아의 사람들은 모두 피난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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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민족의 주력군도 전부 엘반티아 옆 칼렘베이에서 대기 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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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약 하루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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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아,카스메니,트우레,코르카냐의 가주들은 모두 무혈로 자신의 집까지 돌아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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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 날, 6월 11일 에스라스타 연방 왕국이 건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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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코아 협정에 따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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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이 피면 테이아의 왕이 집권하고,초록색 잎이 나면 카스메니가,단풍이 들면 트우레가,첫눈이 내리는 날부턴 코르카냐가 집권한다라 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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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 애매모호한 조항은 건국 10년이 되고 다시 열린 제 2차 아코아 4자협정에서 개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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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우레 탄압과 코르카냐 대학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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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무사히 연방 왕국이 자리 잡는 듯 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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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적으로 적었던 트우레와 코르카냐는 테이아와 카스메니에게 휘둘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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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으로 2분기사건으로 테이아와 카스메니가 트우레와 코르카냐의 집권기간에 왕정의회를 나오지 않는 사건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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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우레와 코르카냐는 항의했지만 묵살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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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테이아가 다시 집권하며 에스라스타의 흑역사가 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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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아는 2분기집권을 위해 트우레인들의 특별도시를 의도적으로 봉쇄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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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적 북쪽에 사는 코르카냐인들을 북쪽 야만인이라 몰아세워 사회적으로 고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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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우레인들은 이 같은 차별에 반대해 우루투시에서 시위를 하는데 이 시위 과정에서 테이아인 1명이 부상당한 것을 명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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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아가 트우레 시위를 탄압하면서 시위 했던 트우레인 중 21%가 사망하거나 부상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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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테이아의 집권기간이 지나고 카스메니가 집권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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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스메니는 코르카냐인들이 눈에 걸렸고 북방 야만인들을 핑계로 코르카냐인들을 엘루비안냐의 갈라시타숲에 격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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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을 질러버리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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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뿐만이 아니라 코르카냐 특별주에서도 카스메니군이 항상 배치되어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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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가다 보이기만 해도 죽이는 잔인한 학살극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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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참다 못한 트우레와 코르카냐인들은 베나울테르에 모여 무력시위를 시작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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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우레,코르카냐 및 소수민족 차별 금지에 관한 법률이 통과하며 탄압과 학살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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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당시 코르카냐의 정치가 멜리가울 시메키말사가 연설을 했는데 그 중 현재까지 내려오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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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우리가 더 신체적으로 강하고,기술적으로 진보되어있으면 이렇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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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우리가 코르카냐인이 아닌 테이아,카스메니인이었다면 이렇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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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우리가 에스라스타라는 왕국이 아닌 개별적인 자주국에서 살고 있었다면 이렇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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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우리는 바꿔 냈고 우리의 후대는 이렇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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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3차 아코아 4자협정과 법의 대대적 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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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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